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집에 매트를 깔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걸음이 서툰 아이의 안전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그간 층간 소음의 피해자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경험이 충만하기에 이웃과의 갈등을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가능한 모든 바닥에 빈틈없이 매트를 깔기로 마음먹고 이 계획을 친정 엄마에게 말했다.
왜 그랬을까. 왜 말했을까. 아이가 태어난 후 당근 마켓에 푹 빠져있던 엄마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만 원, 3만 원에 나온 중고 놀이방 매트를 한 장씩 우리 집에 들고 오기 시작했다. 모든 매트의 디자인이 달랐음은 물론이고, 찍힘이나 낙서 정도는 애교였으며, 크기도 조금씩 다른 총천연색의 매트가 우리 집 바닥을 모두 점령하고 나서야 엄마는 만족했다.
나는... 나는... 처음엔 나름 반항을 했었다. 이런 매트 싫다고. 그냥 단색으로 통일되게 하고 싶다고. 가능하면 밝은 베이지색이면 좋겠다고. 하지만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 입을 막았다.
“애들은 이렇게 알록달록한 걸 좋아해. 그림도 다양하고 한글과 영어, 숫자까지 있으니 나중에 말 배울 때도 좋고. 너만 눈 딱 감고 참으면 하늘이한테 더 좋은 건데. 인테리어는 무슨 인테리어야. 너만 좋고 애한테는 덜 좋은데 그게 맞냐?”
안 맞는 거 같았다. 나만 눈 딱 감고 참으면 애한테 더 좋다는데 어쩌겠나. 눈 딱 감아야지. 게다가 새 매트를 사려면 한 장에 거의 15~20만 원이니까 비용도 10분의 1로 줄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저걸 다 다시 팔고 새 거로 사고 싶어 하는 게 정말 내 이기심 같았다.
그래서 눈을 감고 살았다. 무려 8개월을. 그리고 그 8개월 동안 매일매일 괴로웠다. 아무리 쓸고 닦고 치워도 정신없어 보이는 현란한 매트를 보면 짜증이 솟구치고, 장난감이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아 레고 블록을 밟고 바닥을 구를 때면 매트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매트 말고도 우리 집은 충분히 알록달록 한데 굳이 바닥까지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 진짜 너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내가 스트레스 받는 건 맞냐?’
안 그래도 모든 몸과 마음의 기력을 육아에 갈아 넣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나도 내가 좋은 거 좀 해도 되는 거 아닌가. 8개월 동안 참았던 어떤 울분이 솟구쳐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네이버 쇼핑에 들어가 장바구니에 오래전부터 담아두었던 매트를 주문했다. 5분도 안 걸려 8개월의 울화가 향긋한 커피 연기처럼 사르르 가라앉았다. 그리고 좀 허무했다. 이게 뭐라고. 이럴 일이었나 싶었다. 진작 살 걸 그냥.
매트를 바꾸고 3개월이 흘렀다. 아이는 바닥에 외계인이 있든 똥이 있든 아무 상관없는 것 같고, 나는 깨끗하고 각이 딱 맞는 아이보리색 매트를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틈만 나면 “여보 우리 집 거실 예쁘지? 매트가 좋아서 그런가!”하고 까부는 나를 보며 남편도 웃는다. 아니 이게 바로 일상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은 가끔 틀리다. 엄마는 나에게 눈 딱 감고 참으라고 했지만,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내 행복을 찾았다. 그러니까 지금 혹시 매트를 뭐 사야 하나 고민인 분이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본인이 좋은 걸로 사라고. 아이는 엄마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 주기만 하면 바닥에 깔린 매트가 뭐든 신경도 안 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