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가한 밤, 아이는 새롭게 알게 된 놀이에 심취해있었다. 나와 남편의 손을 하나씩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뒤로 달려 들어오는 동작을 무한으로(?) 되풀이하는 것인데, 침대에 누워 요지부동인 엄마와 아빠의 손을 끌고 밖에 나가자고 조르다가 우연히 발견한 놀이다. 처음엔 살짝살짝 움직여보던 아이는 동작이 반복될수록 행동이 과감해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온몸을 앞뒤로 던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트리스가 폭신하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무리 있는 힘껏 몸을 기울여도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았으니까. 마찬가지로 아이가 몸을 젖히며 뒤로 체중을 실어도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아슬아슬함이 즐거웠는지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신나게 놀았다.
한 서른 번쯤 반복했을까, 아이는 별안간 우뚝, 멈추어 섰다. 잠시 그 상태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몸을 살랑살랑 앞뒤로 흔들었다. ‘음? 이건 또 뭐 하는 거지? 강약 중간 약?’ 궁금해진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가 그대로 백다운을 했다.
여기서 잠깐 백다운이 뭔지 설명하자면, 1997년 젝스키스가 ‘학원별곡’이라는 곡으로 활동할 때 이재진과 김재덕이 했던 비보잉 동작으로 똑바로 서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몸을 꼿꼿하게 세운 상태에서 누가 이마를 톡 쳤는데 사지가 마비되어 몸의 어느 곳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쿵, 하고 눕게 되는 거라고 할까.
침대 위였고, 나와 남편이 양쪽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느닷없는 백다운에 우리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정작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는 세상 행복하게 꺄르르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야 다치지 않았구나 싶어서 한시름 놓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젠 그걸 또 반복이다.
그래 다치지도 않고 너는 한없이 즐거우니 계속해라 해, 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주고 있자니 오래된 장면이 떠올랐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정확하지 않은 언젠가 수련회를 갔을 때 비슷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인지 레크리에이션 강사인지 누군지 모를 남자가 같은 반 애들을 두 명씩 짝지어준 다음 상대방이 뒤에서 잡아줄 거니까 그걸 믿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라고 시켰었다. 모든 기억이 희미한 와중에도 그때 그 느낌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 마디로 진.짜. 어.려.웠.다!
몸을 살짝만 뒤를 기울여도 불안해서 계속 뒤를 힐끔거리게 되고, 진짜 안 다치는 게 맞을까, 쟤가 날 제대로 못 잡으면 나는 그냥 넘어지는 건데 괜찮을까, 끝없이 걱정하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남자는 마이크를 잡고 망설이는 우리 사이를 걸어 다니며 친구를 진심으로 믿으면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친구의 손에 내 몸을 맡겼고, 그때 왠지 모를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내가 친구를 받아줘야 하는 차례가 되었을 땐 절대 친구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찼던 것도 기억난다.
수련회도 못 가봤고, 마이크 잡고 친구를 믿어라 어쩌라 하는 어른도 만난 적 없는 아이는 이미 나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망설임 없이 허공에 던지고 있다. 단 한 번도 믿음에 배신당해본 경험이 없는, 아직 의심이 뭔지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인 아이는. 지금 아마 그때 내가 느꼈던 기쁨과 감동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아이의 티 없이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진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르고 정직하게. 선하게. 부끄러움 없이. 이 순수한 믿음에 보답해야겠다고. 더불어 이 아이가 평생 뭘 해도 절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언젠가 삶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만난다고 해도, 절대 진짜 바닥에 패대기쳐지지는 않게. 내가 그 바닥에 먼저 누워 몸으로 막든 손으로 잡든 어떻게든. 아이가 다시 올라갈 힘이 남을 만큼만 다치게 하겠다고. 오래간만에 다시 한번, 결의로 나를 꽉꽉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