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가로질러 가로로 자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누웠다. 창가 쪽 벽에 찌그러져 있을 남편의 목소리가 화장실 쪽 벽에 모로 누운 내게 조심스럽게 와닿는다.
“내가 스무 살 때쯤? 그러니까 대학에 막 들어서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인데... 그때 어떤 선배가 여자친구를 자주 데리고 왔었거든. 당시 내 눈에 그 선배는 진짜 멋있는 형이었는데 그분의 여자친구는 별로 안 예쁜 거야.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어느 날 누군가 대놓고 물었지. 누가 봐도 형이 아까운데 왜 사귀냐고. 그랬더니 그 형이 그러는 거야. 나는 쟤를 너무 사랑한다고. 심지어 방귀 뀌는 것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그땐 그 말을 듣고 저게 무슨 소린가 싶었거든. 전혀 이해가 안 됐어. 그리고 그 이후로 살면서 한 번도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 적이 없었거든.”
느닷없는 남편의 옛이야기에 흥미가 생긴 나는 물었다.
“응, 그런데?”
“그런데 전에 하늘이랑 별이랑 있는데 내가 왜... 갑자기 냄새가 나서... ‘별아 하늘이 응가했나 봐 기저귀 확인해야 할 거 같아.’ 했더니 별이가 ‘여보 미안해... 그거 나야...’ 했잖아. 그때 문득 거의 20년 가까이 된 그 일이 떠오르면서 아, 이거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내가 별이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깨달았어.”
나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리쳤다.
아이씨! 뭐라는 거야!
남편은 그러니까 내가 변비로 고통받던 어느 날, 소리 없이 공기를 채운 나의 향기에 대해 굳이, 지금,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참이나 지난 일인데 말이다. 너무 민망하고 당황스러워서 이제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번에 장인어른 장모님 뵈러 갔을 때 하늘이가 식사 중에 큰 소리로 ‘응가~ 응가~’하면서 갑자기 힘을 줬잖아. 어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손 모아 ‘응가! 응가!’ 소리쳐 응원해주고. 그 응원에 힘입어 하늘이가 마침내 배변에 성공했을 땐, 모두가 박수와 환호로 축하해줬잖아. 하늘이는 신이 나서 꺄르르 웃으며 빙글빙글 돌고.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생각이 났어. 방귀와 똥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게 과연 사랑이구나 하고.”
처음엔 느닷없이 시작한 구수한 이야기에 황당하기만 했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예전에 엄마가 “나중에 네 새끼 낳아 봐라, 똥도 예쁘지.” 했을 때 ‘에이... 설마’ 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진짜 똥도 예쁘다.
처음 아이의 방귀 소리를 들었을 때는 크리스털 종이 싱그럽게 울리는 듯 작고 신비로운 새가 지저귀는 듯 청명하면서도 따스함이 묻어나는 그 소리에 웃음이 터져 나왔었다. ‘우리 애가 방귀도 뀌다니! 거기서 어엿한(?) 냄새도 나다니! 장하다!’ 이런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매일 보는 똥도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 적 없이 살아왔는데,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는데 말이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흔히 사랑을 말할 때 허물이나 단점까지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는 허물이나 단점이 아예 안 보인다. 누군가 ‘아이는 사람을 홀린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아이를 볼 때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전혀 자신 없다. 물론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이런저런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가 생겨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생겨나겠지만 그것조차 나는 사랑하게 될 게 뻔하다.
어후, 똥도 예쁜데, 말 다 했지 뭐.
★ 이 콘텐츠는 온라인 육아전문 기업 <그로잉맘> 어플의 에세이 코너에 매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