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가 목놓아 엉엉 울면 엄마는 말하곤 했다.
“울지마, 울면 힘들어.”
그럼 나는 울면서 생각했다.
‘아니 내가 지금 힘들어서 우는데, 울면 힘드니까 울지 말라는 게 말이야 방귀야?’
마냥 달래주지 않는 엄마가 매정하다 느꼈다. 울고 싶은데 울지 말라고 하는 엄마에게 섭섭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때의 섭섭함을 품고 살았다. 가끔 기억이 떠오르면 ‘우리 엄마 은근 냉정해. 흥.’하고 혼자서 다시 한번 토라지곤 했다.
며칠 전 아이가 잘 자다가 갑자기 “아니야~”하고 소리를 지르며 깼다. 그러더니 오열하기 시작했는데, 뭘 해도 달래지지 않았다. 무슨 꿈을 꿨는지 마음이 단단히 상한 모양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다 밖에 나가라고 소리 지르면서 2시간이 넘도록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입으로는 “엄마 비켜~”하면서도 내 옷자락을 꼭 쥐고 진짜로 밖에 나가지는 못하게 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이를 향해 말했다.
“아가~ 그만 울어. 울지 마. 울면 너 힘들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내 귀로 다시 들으며, 나는 완벽히 이해했다. 엄마가 내게 울지 말라고 했을 때의 심정을.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다. 많이 울면 몸이 얼마나 지치는지. 그리고 싫었던 거다. 내 새끼가 힘든 게.
엄마의 조기 교육 덕분인지 나는 일찍이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터득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릉부릉 시동을 걸면, 일단 타이어에 펑크를 내서라도 가차 없이 운행을 저지한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엑스 표를 그리며 무자비하게 생각의 싹을 밟아버린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래도 너무 힘들면 그냥 시원하게 운다. 울긴 우는데 아주 격렬하게 잠깐 운다. 그야말로 짧고 굵게. 다 울고 나면 세수 한 번 하고, 코 한 번 시원하게 풀고 훌훌 털어버린다.
안 울면 마음에 병이 나고, 너무 울면 몸에 병이 난다는 걸 몇 번의 삶의 고비를 넘으며 확실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스킬은 육아에서 빛을 발했다. 육아가 힘들어 가끔 울음이 터질 때, 나는 잠시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아이처럼 꺼이꺼이 운다. 1분 정도? 그러고 나오면 다시 아이 얼굴을 보며 활짝 웃을 수 있다. 처음에 남편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좀 놀라는 눈치였다. 그게 가능하냐며. 감정을 정돈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남편에게 나는 참 신기한 인간인 것이다.
맞다, 쉬운 일은 아니다. 감정을 빨리 털어낸다는 게. 그렇지만 자꾸 어두운 생각을 하면 어차피 그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건 나다. 잃게 되는 건 내 시간, 망치는 건 내 소중한 하루다. 그 생각을 하면서 단련하면 적어도 우울의 늪에 빨려 들어가느라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책엔 이런 말이 나온다.
일희일비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나는 요즘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그런 내가 바보 같고, 우울해하는 동안 지나가는 오늘 치의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렇다. 확실히 예전엔 없던 감각이 생겼다.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그렇다고 우울했던 기분이 금세 밝아지거나 없던 기운이 마구 샘솟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 고침 정도는 된다. ‘정신 차려, 울상을 하고 지내 봤자 이건 네 하루야’하고.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받기 딱 좋은 게 육아다. 육아라는 일은 쉴새 없이 우리의 하루를 쥐락펴락한다. ‘아 나는 일희일비가 뭔지 모르겠는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만 육아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아 ‘이제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하게 해주세요!’하고 비명을 지르게 될 거다. 그러니 엄마들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힘들게 만든 밥을 새로 산 식판에 곱게 담아주자마자 아이가 바닥에 음식을 다 던져도.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울고 싶어도.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울지마, 울어봤자 너만 힘들어.’
★ 이 콘텐츠는 온라인 육아전문 기업 <그로잉맘> 어플의 에세이 코너에 매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