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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23. 2021

옷 입히기는 타협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아이 옷 막 입히는 부모 - 판 베스트 글 + 댓글의 향연’이라는 게시글을 봤다. 아이 낳기 전엔 상황과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힌 부모의 행동을 아동학대라고까지 생각했는데, 친정 엄마 생신 모임에 기어코 래시가드를 입고 간 자신의 4살 딸을 보니 그동안의 오해가 말끔히 풀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는 댓글이 900개가 넘게 달렸다. 12월인데 맨발에 크록스 신는 아이, 한여름에 기모 입는 아이, 고무장갑 끼고 등원하는 아이, 종이 박스만 뒤집어쓰고 나가는 아이 등등… 댓글에는 눈으로 읽고도 믿을 수 없는 수많은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폭소할 내용이지만 그 글을 읽는 내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 조금 지나서부터 자아가 점점 강해지던 아이는 18개월 들어서면서는 엄청난 옷 투정으로 본인의 개성을 뽐내기 시작했다.

      

기저귀에 있는 무늬부터 시작해서 내복, 겉옷, 양말, 외투와 모자, 마지막으로 신발까지 총 7단계에 걸친 옷 입히기 퀘스트에서 어느 단계 하나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는 거다. 결국 문밖에 나설 때는 정말 눈 뜨고 못 볼 꼴로 나가게 되는데 본인은 무척 흡족한 모양이다. 언제나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초반에는 곰에 푹 빠져서 내복이고 겉옷이고 곰 그림 있는 옷만 입겠다고 떼를 썼다. 그게 아니면 울고 뒤집어지고 옷을 다 잡아 뜯고 난리였다. 실랑이에 지친 나는 어느 새벽 홀린 듯 곰 모양 와펜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집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꺼내서 그걸 꿰매 붙였다. 곰이 병아리로 바뀌면 곰 와펜을 다 떼고, 다시 병아리를 꿰맸다. 그리고 그 병아리는 이제 펭귄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나는 해탈한 심정으로 인터넷에서 펭귄 와펜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는 중이다. 계속되는 바느질로 옷은 너덜너덜하지만 이 추운 날에 벗고 나가지 않는 게 어디냐 위안 삼고 있다.     

 

이제 겨우 10kg 나가는 코딱지만 한 아이 때문에 절절매는 내 모습을 보고 친정 엄마는 조언했다.  

     

“네가 너무 많이 물어봐서 그래. ‘이거 입을래?’ 물어보지 말고 ‘이거 입자!’하고 그냥 입혀.”     


그게 되면 벌써 그렇게 했지. 나는 할 말이 정말 많았지만, 모두 삼키고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응, 그래. 엄마가 한 번 해 봐.”     


호기롭게 내 손에서 옷을 받아든 엄마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뒤에 나를 향해 외쳤다.     


“아후 야! 뭐 이런 애가 다 있니?”     


응 엄마, 내 딸이야. 엄마 손녀고. 바로 여기 있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에게 옷을 입히기 전엔 항상 전운이 감돈다. 아 좀 쉽게 쉽게 갈 수는 없나 답답한 마음이다. 엄마 말대로 애초에 내가 너무 다양한 선택권을 준 걸까 자책도 했다. 그렇게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가야 하나 답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국가에서 공인한 피아노 조율 명장 이종열 조율사가 나오고 있었다. 65년의 긴 세월 동안 조율에 매진해온 그는 ‘조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유재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타협이죠. 그러니까 도 음 하나를 결정을 하려면 위쪽 4도한테도 물어보고 5도한테도 물어보고 옥타브한테도 물어봐야 돼요. 내가 여기 서도 되는가. 다 오케이 그러면 그 음이 그 자리에 서는 거예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그간의 아이의 옷 투정에 대한 걱정과 혼란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 육아도 조율이고 타협이다. 나는 이제 막 꽃봉오리가 움튼 내 아이의 자아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과 관대함으로 아이가 마음껏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 다짐했다.     


앞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묻지 않고 그냥 하는 일은 가능한 없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나와 아이만의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가고 싶다. 우리의 조율 과정 밖에 있는 소리에는 잠시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두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집중하고 싶다. 아이를 믿고. 나를 믿고.           






★ 이 콘텐츠는 온라인 육아전문 기업 <그로잉맘> 어플의 에세이 코너에 매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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