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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n 24. 2021

엄마의 책상

   


2020년 9월, 아이를 낳고 1년 3개월 만에 내 방이 생겼다. 창고처럼 쓰던 방을 아이 방으로 꾸밀까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찼던 방을 비우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커다란 책상을 주문한 것이었다. 몇 날 며칠 밤마다 인터넷을 뒤져 마음에 쏙 드는 다크초콜릿색의 고무나무 책상을 찾았다. 책상에 꼭 맞는 의자와 조명도 주문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배송조회를 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세팅한 뒤 모두가 잠든 새벽 처음으로 ‘내 자리’에 앉았을 때의 그 벅찬 감정은 와 진짜. 이건 진짜.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남편이 상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는 이미 긴긴 가정 보육으로 인해 집과 나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었고, 매일이 너무 지루해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내 책상은 상시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의 업무용 책상으로 변경되었고, 내 방 바닥에는 다시 오색빛깔 놀이방 매트가 깔렸다. 책상이 있던 자리에는 시소와 흔들 말, 레고 테이블이 자리했고. 슬개골이 좋지 않은 개들을 위해 거실 소파까지 처분하고 나니 나는 그야말로 앉을 자리 하나 없어졌다. 그렇게 집 정리를 마친 날 밤, 슬금슬금 다시 책을 들고 식탁에 앉아. 거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원래 내 자리는 여기구나. 다시 여기인걸. 꼴에 무슨 서재를 만든다고..’ 맘속으로 중얼거리며 굉장히 울적했었다.     


그렇게 또 2주가 흐른 어느 날, 나는 홀로 어두운 밤길을 운전해 한 군인 아파트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부부가 당근 마켓에 올린 2만 원짜리 책상을 하나 낑낑대며 끌고 와서 아이 매트를 한 쪽으로 밀고 가로 80센티, 세로 60센티의 공간을 확보해 욱여넣었다. 어쩐지 처음 샀던 책상 보다 더 마음이 갔다. 가격은 10분의 1도 안 되지만 더 소중했다. 작은 낡은 책상이 마치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취처럼 느껴졌다. 애틋한 마음까지 들었다. (지금 글도 아이를 재우고 빠져나와 그 책상에 앉아서 쓰고 있다.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하다. 흑흑.)     


친정 엄마는 아이 장난감으로 터져나가는 우리 집을 보며 ‘네 책상 괜히 샀지? 네 책상을 치우면 될 텐데..’하고 말한다. 나는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고 이해한다. 그 시절에는 다 그랬지. 아니 어쩌면 여전히 그럴지 몰라. 어딜 감히(?) 주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담. 애들 책상은 있어도 엄마 책상이 어디 있어. 지난겨울 읽었던 이재영 작가의 에세이 <예쁘다고 말해줄 걸 그랬어>에 나온 이 구절처럼 말이다.


“나는 문득 우리들 각자의 집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한 번이라도 사적인 적이 있었나? 그 안의 구성원들의 삶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매일매일 ‘살림’이란 걸 하면서 과연 우리는 ‘사적인 공간’이 주는 자유를 누린 적이 있던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사적이라는 것의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인간으로서 공간이 주는 자유를 누리진 못한 것 같다. 우리들이 맡은 일, 살림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때문에 엄마는 언제나 공용되고 엄마의 삶은 늘 개방적이다. 우리는 살림하는 사람들이니까.”      


비슷한 내용은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엄마만 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집 전체가 내 방이지.” 엄마의 뜻과 달리 그 말은 엄마의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며느리ㅡ아내ㅡ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학생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을 다닐 때도 집과 회사에는 완전한 내 자리가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나일뿐인데, 아이를 낳는 순간 이토록 처지가 바뀌었다는 게 여전히 믿을 수 없다. 엄마가 되어 살림을 한다는 게 사적인 내가 공용이 되는 거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엄마가 장소 그 자체라는 말도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책상을 사수했다. 잠시 잃었지만 내 힘으로 되찾았다. 나는 그게 너무 자랑스럽다. 나 자신이 기특하다. 앞으로 이 책상을 머리에 이고 자는 한이 있어도 절대 안 버릴 거다. 집이 좁다고 느껴지면 아이 미끄럼틀을 버릴 거다. 퍼블릭 김별이 아니라 하루에 1시간이라도 프라이빗 김별로 살 거다. 장소가 아니라 한 인간이 될 테다. 가로 80센티, 세로 60센티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못 할 게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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