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bluebean.
나갔다 오는 길에 있는지도 몰랐던,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러 봤다.
그간 오가면서 몇 번 봤는데 늘 손님이 없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가게에 손님이 많다. 그리고 그런 것 치고는 조용하다. 물론 조용한 건 가게의 독특한 구조 덕분인 것 같지만.(골목의 작은 가게를 두 개 나란히 쓰고 있다. 오른쪽이 책장도 있고 해서 궁금했던 쪽인데 대부분의 손님이 그쪽에 있어서 나는 카운터가 있는 왼쪽 공간에 있기로 했고, 카운터 너머로 공간이 또 나뉘어 있는 자리라서 음악소리와 제빙기 소리 정도 이외에...라고 쓰기가 무섭게 옆 자리 사람이 통화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낮게 얘기해줄 줄 아는 상냥한 사람!)
사실은 그의 상냥함에 이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
자리로 가져다주는 음료를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는 걸 보고, 세상에 사소한 일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쓰고 싶어 져서.
학생 시절, 캐나다에 잠시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홈스테이 맘이 그런 말을 했다.
"넌 한국인 치고 Thank you와 Sorry를 많이 쓰는구나!"
응? 싶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서양인들은 모르는 사람이랑도 눈 마주치면 Hello, 어쩌다 스쳐도 Sorry, 가게 직원들에게 물건 받으며 Thanks, 나갈 땐 Have a nice one. 뭐 그런 관습이랄까 습관 같은 게 있는데, 한국애들은 (그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그런 상황들에서 Thank you나 Sorry를 잘하지 않는다는 것.
그전부터 내가 그런 말들을 잘했었는지, 아니면 미드나 영드를 보면서 영어를 상황적으로 익힌 거라 영어를 쓸 때만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그 이후로는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런 말들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오늘만 해도 여러 차례. 가게에서 시디 사며 감사합니다, 여기서 커피 받으며 감사합니다, 아까 국민은행 적금 만기 알림 전화 끝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 상대방이 불친절하다거나 해서 내가 기분이 상한 경우에는 생략하기도 한다. 나만 아는 소심한 복수다. 나는 스쳐지난 모든 이의 안녕을 빌지만 너의 안녕은 빌어주지 않겠다는 거지. 하하하하하.
일을 한 이후로는 더 많이 했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상냥한 한 마디가 기분을 낫게 하는 일이 제법 있으니까. 식당에서든 카페에서든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든,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물론 상냥하고 다정한 말에 비해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이 파괴력이 크긴 하다.
나만 해도 간호사님은 싹싹하고 잘 웃어서 좋다던 많은 분들보다, 밑도 끝도 없이 욕하고 소리 지르던 몇 안 되는 케이스가 더 선명하게 기억나니까.
그래도 덕분에 검사 잘 마쳤다며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를 꾸벅해주시던 모습 같은 걸 생각하면 '다시 병원에서 일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무모한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나이트 근무할 때 나눠주시던 야식, 혈압 잴 때 무작정 주머니에 꽂아주시던 박카스나 귤, 그런 사소한 것들의 사진은 핸드폰을 몇 번 바꿔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좀 더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 서양인들처럼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건네진 않더라도, 뭐가 되었든 주고받을 때는 고맙습니다, 부딪히면 죄송합니다, ARS나 카톡 상담 마무리에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말들로 서로 별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기분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