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중요성
6월 30일에 세운 7월 계획은 이랬다. '매일 짧게라도 브런치에 글쓰기.'
.... 그리고 7월 25일, 오늘 이 글이 7월의 첫 글입니다. 데헷.
5월 30일에 쓴 글처럼 쓰지 않아서 사라진 글들은 수도 없다. 경상도 토박이답게 말하자면- 천지삐까리다.
7월 계획이자 목표는 1일 자정이 지날 무렵 수정했다. '매일 뭐든지 쓰기.'
어차피 매일 일기는 쓰니까. 심지어 레시피 노트도 정리 중이고 하다못해 끄적끄적 낙서라도 하겠지.(...)
쓰다만 여행기를 7-8월에는 다 쓰고 마무리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더 긴 시간의 유예를 뒀다.
올해 안에만 하지 뭐.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지만 항상 60% 정도만 성공하고 30%는 미루며 10%는 아주 오래 미루곤 한다.
사실은 게으름 피우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이제는 '게으른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게을리 시간을 보내고 나면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전형적인 한국인답게.
작년 한 해 이런저런 일을 겪고 터닝포인트가 된 시간을 겪으면서, 그 죄책감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내가 게으르다는 걸 인정하며 게으른 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거의 1년에 걸쳐서 나를 타이르는 중이다.
"게으른 게 나쁜 것만은 아냐. 지금 이 시간은 분명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야."
Oasis의 The Importace of Being Idle을 좋아한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늘 공감했다.
"A man's got a limit, I can't get a life if my heart's not in it."
칭찬받고 인정받는 게 좋아서 뭐든지 열심히 했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착한 딸, 착한 학생, 좋은 친구... 뭐가 됐든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늘 이제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임시방편으로 해소하다가 작년에 진짜 한계에 맞닥뜨리고 무너진 다음에야 절절히 깨달았다.
'아, 사람은 한계가 있지. 마음이 여기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거구나, 정말.'
여전히 가끔은 멍하니 시간을 보낸 다음 죄책감을 느끼지만 곧 스스로 설득한다.
"잘했어. 필요했던 거야. 게으름 피우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올해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내 이름은 -에요."만큼이나 많이 쓰고 말한 문장이 이거다.
"Soy vaga." 저는 게을러요.
스페인어에는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동사가 2가지인데 하나는 '본질'을 나타내는 형용사에, 다른 하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쓴다. 그리고 윗 문장의 'Soy'는 본질을 나타낼 때 쓰는 거다.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르다. 타고나길 게으르게 태어난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게으르게 빈둥대는 시간은 굉장히 중요하고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좀 더 게으르게, 빈둥대며 지내야지.
+사족.
처음 브런치를 열어서 쓰려고 했던 건 다른 이야기였다.
7월의 또 다른 목표, "책상 위에 쌓인 책 다 읽기"에 대한 글.
그리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책을 거의 마지막까지 미루면서, '맛있는 건 나중에 먹고, 재밌는 것도 나중에 하고, 나쁜 일/덜 좋은 일을 먼저 하고 좋아하는 일로 마무리를 하려는 습성'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는 조만간 쓰기를 바라며, 저는 이만, 오늘도 빈둥대러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