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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리 May 10. 2020

바깥놀이가 좋은 아이들

바깥놀이 왜 좋을까?

<바깥이라는 공간>


 2020년도의 상반기는 어쩌면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들이 멈춰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멈춰졌다. 특히 '바깥놀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과 자가격리 등으로 우리는 바깥을 쉽게 다니지 못했고 이를 통해 바깥의 소중함을 느꼈다. 바깥은 그런 곳이다.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일상의 일부이지만 그 소중함과 중요함은 잘 인식되지 않았던.


 우리 성인들도 자유롭지 못한 바깥활동에 답답함을 느꼈을 텐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답답했을까?

특히나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얼마나 많은가. 실내라는 제약된 공간이 아닌 넓기에 할 수 있는 놀이도 다양한 바깥 공간. 층간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어른들의 눈치는 절반만 보아도 되는 바깥 공간. 그 공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줄어들어 버린 실정이다. 사실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미세먼지나 황사 등의 환경적 요인과 사교육의 확산으로 학원가를 맴돌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바깥에서의 놀이는 많이 제약되고 있다.


 왜 우리는 아이들의 바깥을 막아버린 것일까. 환경적 문제? 성인의 욕심?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바깥놀이가 주는 것>


 바깥놀이는 아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준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전인적 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종합 선물세트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선물상자들을 하나 씩 열어본다면,


 첫 번째, 신체의 발달이라는 선물. 이는 당연한 것이다. 바깥에서 뛰어놀고 다양한 기구들을 이용하면서 아이들의 대근육은 발달하며 모래놀이를 하거나 나뭇가지 등의 자연물로 놀이하며 소근육을 조절하는 능력도 도모된다.


 둘째, 사회성 발달. 사회성 발달은 바깥놀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놀이가 가져다주는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또래와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한다. 가령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규칙이 있는 게임부터 소꿉놀이와 같은 역할놀이를 하기도 하고 놀이터에 있는 시설물들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래와의 공동 놀이를 통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놀이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은 한층 자라나게 된다.


 셋째, 인지 발달. 바깥에서 뛰어 논다고 하면 신체적인 성장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지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공원에서 나뭇잎이나 돌멩이, 나뭇가지 등의 자연물을 발견했을 때 이를 관찰하며 과학적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자연물들의 크기를 비교하거나 유사한 자연물을 모아 보면서 수학적 사고 능력도 확장시킬 수 있다.  


 넷째, 언어 발달. 바깥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다. 다양한 색이 있고, 자연이 있다. 풍부한 말할 거리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소재거리만 있다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다. 혹 아직 말을 배우는 시기의 영아라면 성인이 많은 것들을 직접 보여주며 말할 수 있고 이는 곧 아이에게 다양한 언어 자극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서발달. 자유로운 공간에서 제한을 덜 받으며 놀이한 아이들은 내적으로 쌓였던 여러 스트레스들을 해소할 수 있다. 바깥놀이가 바로 아이들의 정서 순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잠깐의 산책, 놀이터에서의 놀이, 공원 나들이등을 통해 아이는 시원한 공기와 자연을 느끼고 그 속의 일부가 되어 놀이를 찾아 한다. 그것 만으로도 아이는 긍정적인 감정을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 선물을 통해 결국 아이는 전인적 발달을 해나간다. 바깥놀이를 통해서 말이다.

자연을 만나다

<우리의 인식을 조금만 바꾼다면>


아이들이 바깥에서 모래놀이를 하느라 주머니에 모래를 한가득 담고 들어온다면,

비 오는 날 나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다면,

발견한 곤충을 잡아보고 싶어 한다면,


성인인 당신은, 부모인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릴 적에 바깥에서의 신나는 놀이를 경험했을 것이다. 모래를 모아 모래성을 쌓기도 했을 것이고, 모래는 쌀밥이 나뭇잎과 꽃 잎등은 반찬이 되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래놀이를 할 때 모래 위에 철퍼덕 앉아 놀이하고 싶다. 모래가 옷 여기저기 침투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모래를 만지는 촉감이 좋고, 모래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하며 재미를 느끼고 싶을 뿐이다.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관찰하고 싶고, 첨벙이는 물장구를 느껴보고 싶다. 비는 어떻게 내릴까? 비를 맞으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들은 비를 맞았을 때의 그 축축함과 찝찝함을 알지 못한다. 그저 비 내리는 바깥 풍경도 재미있는 놀이터인 것이다.

개미를 발견했다. 자세히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손으로 잡았다. 아이들은 바닥에 기어 다니는 작은 곤충들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기하고 알고 싶은 생명체인 것이다.


조금만 인식을 바꿔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깥놀이를 생각해본다면 좋겠다.

물론 무조건적인 바깥놀이의 허용과 제한 없는 놀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자기 조절력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아이들에게 성인의 적절한 한계선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이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 합의하에 설정한 한계선!

예를 들어 비 오는 날의 산책을 한다고 했을 때, 시간과 공간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비 오는 것을 보러 엄마와 함께 산책을 갈 순 있어. 그렇지만 비가 많이 와서 춥기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해. 얼마큼 있다가 올까?"

"비 오는 날 차가 많은 곳으로 가면 위험할 수 있어. 집 앞 공원이나 놀이터로 갈 수 있는데 어디에 가 볼까?"


성인이 마음대로 정해 통보하는 것으로 정해진 놀이를 하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놀이에서 성인의 개입이 필요하고 함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 아이를 참여시키자. 그렇다면 아이의 자발성과 주도성이 바탕이 된 진정으로 즐거운 바깥놀이가 아이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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