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알람 소리가 울리고 하루를 위해 준비를 시작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유치원 교사인 나의 아침은 '집에서의 아침 그리고 유치원에서의 아침' 두 가지로 나뉜다.
집에서는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준비를 한다. 씻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바로 직장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유치원까지는 운전해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가는 편인데, 이 소리들은 단지 뒷 배경이 될 뿐 나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느새 유치원에 도착한다. 원무실에 들어가 오늘 하루 나의 목을 보호해줄 루이보스티를 한잔을 타서 자리에 앉는다.
8시 40분~50분쯤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양 손에 활동 자료들을 챙기고 교실로 이동한다. 이 순간부터 '유치원에서의 아침' 즉, 등원 맞이가 시작된다.
교실 불을 밝힌다.
창문을 열어 밤새 탁해졌을 공기를 환기시키고,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킨다. 교실환경은 아이들의 건강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아침마다 하는 이 관례적인 절차는 어느새 몸에 배어 익숙하다.
교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수업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선생님"하며 진정한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라은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항상 우리 반의 첫 번째 등원자는 라은이 인 경우가 많다.
"라은이 왔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우리 둘.
인사를 나누는 도중에 나의 눈동자는 라은이의 얼굴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다. 다친 부분은 없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빠르게 스캔하는 것이다. 혹여나 없던 상처가 생긴다면 부모에게 이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등원 시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변화된 아이의 헤어스타일, 새롭게 하고 온 장신구나 새 옷 등을 알아봐 주는 것은 선생님의 센스이다.
"오늘 새로운 머리띠하고 왔네? 잘 어울린다~" 이 한 마디에 라은이는 더욱 환한 미소를 보인다.
라은이와의 인사가 끝날 때쯤에 시우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다.
"라은아~ 같이 가야지! 왜 혼자만 올라가냐?" 시우는 씩씩하면서도 자기를 표현할 때는 조금 부끄러움을 보이는 사랑스러운 남자아이이다.
시우와도 인사를 나눈다.
라은이와 시우는 가방을 정리하는 장으로 이동해 자신들의 물건을 정리한다.
학기 초 3월부터 아이들의 자리와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었고, 지금은 스스로 물건을 착착 정리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던가. 아이들도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챙기는 일에 익숙해하며, 적응되었다.
겉옷을 벗어 바닥에 펼친다. 그리고 옷의 양팔 부분을 가운데로 모아 접는다.
우리는 이것을 일명 '배꼽손 자세'라고 말한다. 이후 옷의 윗부분을 아래로 반 접는다. '안녕하세요'이다. 마치 인사하는 자세처럼 옷을 접는 것이다. 이는 아직 옷 접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창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아이들은 옷을 접으며 "배꼽손~ 안녕하세요"를 연신 말하기도 했다.
어찌나 귀엽던지!
시간이 지나 말하지 않고도 옷을 접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작은 일에서도 대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겉옷을 접은 뒤에는 가방정리가 남아있다.
가방정리는 꽤 중요하다. 가방 안에 엄마가 선생님에게 보내는 쪽지가 들어있을 수도 있고, 아픈 나를 위한 약이 들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가방정리를 하고 나서 내가 한 번씩 확인하는 것이 학기초에는 매우 중요했다. 아직 정리가 미흡한 아이들이 실수를 하여 부모와의 소통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여기 편지 있어요" 시우가 달려와 쪽지를 건넨다. "고마워 시우야~"
시우가 전해 준 종이에는 엄마가 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선생님 오늘은 유치원 버스 타지 않고 도보로 하원 할게요~’
간단한 메시지이지만 그 중요도는 매우 높다. 이 쪽지를 전달받지 않았다면 하원 시 시우가 유치원 버스를 탔을 것이고 시우 엄마는 유치원에 헛걸음했을 것이다. 더불어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한 나의 실수로 부모와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으니.
으앗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라은이는 가방 앞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투약함에 넣고 자신의 이름이 쓰인 약병 그림도 붙인다. 자신의 약임을 알리기 위한 방법이다.
아이들의 약을 빼먹지 않기 위해 학기 초 투약함을 만들고, 투약함의 용도를 알려주니 우리 반 아이들은 자신의 약을 투약함에 잘 넣어주었다. 유치원에 보건교사가 상주하고 있었다면 투약을 도와주었겠지만 지금 유치원에서의 투약 업무는 전적으로 교사 몫이다.
환절기에는 투약함이 꽉 찰 때도 있다. 이 때는 일찍이 투약함의 약들을 꺼내 교사 자리에 가져다 두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약과 약 먹을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약들 중에는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약도 있다. 바로 항생제가 대표적이다. 다행히도 각 반에 약품냉장고 용으로 쓰고 있는 작은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어 쉽게 냉장보관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가방 속 물건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제자리를 찾아가면, 물을 준비할 차례이다.
유치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원은 개별 물통을 사용한다. 마지막 정리로 물통에 물을 담는 일이 남아있는 것이다.
정수기는 복도에 있고, 아이들은 물통을 들고 정수기로 가 물을 담아온다. 단순한 일 일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통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의 물을 담은 뒤, 다시 물통의 뚜껑을 닫는다. 나름 과정이 있고 도중 실수를 하면 바닥이 물로 흥건해지는 상황을 겪어야 만 한다.
오늘은 무사히 물 담아 오기에 성공할 것인가? 학기 초, 걸레를 가져가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물 흔적을 여러 번 지워냈던 기억이 있는데.. 불안한 마음에 교실 뒷 문을 열어 라은이 와 시우의 모습을 살펴본다. 다행히 두 아이는 물뜨기에 능숙했고 넘치지 않을 만큼의 물만 물통에 잘 담았다.
오늘 하루 신나게 놀며 목이 마를 자신을 위해 물을 준비한 아이들! 이제 정리는 끝났다.
물통을 정해진 자리에 까지 놓은 아이들은 놀이를 시작하려 한다. 그때 라은이가 말한다.
"맞다 손 씻어야지~ 시우야! 손 씻어!" 야무진 라은이의 말에 시우는 화장실로 간다. 둘은 손을 씻고 나와 정말 놀이를 시작한다. 이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7분도채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익숙해진 나름의 등원 절차인 것이다.
“선생님 경민이 왔어요!!”
또 다른 아이가 등원했다. 내가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등원한 아이들은 어떤 친구가 다음으로 유치원에 왔는지 나에게 알린다. 라은이가 말한다.
“경민이가 오늘은 3등으로 왔네!”
아이들에게는 등원 등수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몇 번째로 왔는지 등원 순서로 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이것 조차 등수가 된다.
경민이도 처음에 등원 한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오늘은 누가 일등으로 왔어?”
경민이의 물음에 라은이가 대답한다.
“내가 제일 먼저 왔지. 시우가 2등으로 왔어!!” 라은이는 일등으로 등원한 것이 큰 자랑거리이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일등을 알았고, 일등을 좋아했으며, 일등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일등’이 얼마나 중요하고 자주 언급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줄을 설 때, 활동을 할 때, 우유를 마실 때, 양치질을 할 때 등등 모든 일에서 "아싸 내가 일등이다!"라는 말들이 자주 들려오곤 한다.
'일등'과 '꼴등'을 구분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일등'은 꼭 해보고 싶은 등수이자 최고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등원 시간은 어떤 아이에게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경민이가 등원한 다음으로 새빛이 가 들어온다. 새빛이는 나와 인사를 나누고 등 뒤로 메고 있던 가방을 빼서 가슴 앞으로 소중히 감싸 안는다. 오늘도 가방 안에 놀잇감을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하다.
새빛이는 새로 산 놀잇감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 등을 집에서 챙겨 오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행동은 아니지만 한 아이가 놀잇감을 가져오기 시작하면 다른 아이들도 놀잇감을 가지고와 그 놀잇감으로 놀이하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래서 등원 시에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나 놀잇감은 가져오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 혹 가져오더라도 친구들에게 한 번 보여준 뒤에는 가방에 넣어두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새빛이가 약속을 꽤 잘 지킨다는 점이다. 가방에 소중히 담아온 놀잇감을 자랑스럽게 소개 한 뒤에 가방에 다시 넣고 절대 꺼내지 않는다.
오늘 새빛이가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가끔은 나도 궁금할 때가 있다. 조용히 새빛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새빛이는 로봇으로 변하는 경찰차를 꺼낸다. 크기도 꽤 크다.
가져오기 무거웠을 텐데 이렇게 챙겨 온 것을 보니 친구들에게 꽤나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빛이가 경찰차를 꺼내자 친구들이 몰려온다. 새빛이는 금세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인기 있는 아이가 되었다.
새빛이가 경찰차를 보여주며 로봇으로 변신시키니
"우와!" 친구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진다.
이 감탄사들은 새빛이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새빛이의 오늘 하루는 아주 기분 좋게 시작될 것이다.
도보로 등원하는 아이들의 경우 유치원 현관에서 엄마와 인사 후 혼자 교실로 오게 된다. 그런데 오늘 지혁이는 엄마와 함께 교실로 왔다. 엄마와 헤어지기 힘든 것이다. 내가 다가가자 지혁이는 엄마의 품속을 더욱 파고들며 울먹인다.
"지혁이 왔어~? 지혁아 오늘은 엄마랑 더 오래 있고 싶었구나"
나의 말에 지혁이 엄마는 "잘 왔는데 갑자기 또 이러네요"라며 어떻게 아이와 헤어져야 할지 난감함을 드러낸다.
"지혁아 선생님이 안아줘야겠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이 더 많이 안아줄 수 있어"
"지혁아 선생님이 오늘 많이 도와줄까?"
여러 말 끝에 지혁이는 기분이 나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왔다. 엄마와 무사히 헤어진 것이다. 학기초에는 적응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등원 시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기 중반, 학기 말이 되었다고 해서 아이들의 눈물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컨디션, 상황에 따라 아이들의 기분은 급속도로 변하고 오늘처럼 등원을 힘들어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교사는 원래의 넓은 마음에서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등원하다가 오늘 왜 저러지?' , '또 우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은 더 어긋난다.
속상할 마음을 알아주고 읽어주고 공감해주기만 해도 아이의 마음이 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믿어주어야 한다. '힘들게 등원했지만, 내일은 씩씩하게 오겠지'라고 말이다.
오늘의 내가 울며 등원한 아이를 잘 달래주고 위로해주었다면 분명 내일 등원할 아이의 모습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9시부터 똑딱똑딱 9시 15분, 9시 30분씩 대략 15분 텀으로 아이들이 등원을 한다. 등원한 아이들도 등원 절차를 밟으며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자유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등원 시간이 너무 늦는 아이도 있다.
보통은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 가량 자유놀이를 진행하는데 너무 늦게 등원한 아이들은 자유놀이를 길게 하지 못한다.
특히 은유가 그러하다. 은유는 빨리 오면 10분 정도 자유놀이를 하고, 대부분은 자유놀이가 끝나고 정리시간에 오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9시까지의 등원 시간을 잘 지킨다면 친구들과 함께 자유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은유가 조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할 수 있게 자유놀이 시간을 늘려서 운영한 적 도 여러 번. 놀이 시간이 확보되면 은유는 미술작품 만들기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미술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화가, 디자이너, 조각가, 음악가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내기까지는 많은 고뇌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이와 같다. 어린아이들도 작품을 만들어 낼 때 '뚝딱' 단시간에 만들어 내진 않는다. 내가 은유를 위해 20분의 자유놀이 시간을 늘려 운영해도 은유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은유는 울며 등원하는 경우도 잦고,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힘들어할 때도 있다. 나만의 노력으로 아이를 도울 수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필요한 방법은 바로 부모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은유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은유 엄마와 전화통화라는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공유하였고, 그 이후로 은유의 등원 시간이 조금은 빨라졌다.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 그만큼 중요한 아이들의 유치원에서의 하루와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16명의 아이들이 등원할 때마다 아이들의 두 눈을 마주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간혹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다가 아이와의 인사를 건너뛰거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상태에서 성의 없는 태도로 인사를 하는 교사들도 있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나는 더 밝게 인사해주어야겠다 생각한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지만 16명의 아이들과 교사 한 명이 일대 일로 교류하는 빈도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등원 시간에는 한 명 한 명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다. 일대일의 힘은 크다. 등원 시간을 활용한 일대일의 상호작용! 이러한 상호작용의 반복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싹트게 한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중요하다. 하루의 시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시작이 꼬이고 힘들다면 그 하루는 망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하루 종일 좋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른에게도 하루의 기분을 결정짓는 시간일 텐데 아이들에게 등원 시간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맞이할 때 최대한 따뜻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제 잘 잤는지,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고 왔는지'등 소소한 것들을 관심 있게 물어보며 밝게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이 될 것이다. 선생님의 정성을 아는 아이들은 교실문을 열고 반갑게 달려와 아주 큰 목소리로 먼저 인사해줄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