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자유놀이 속에 바쁜 교사의 움직임
등원 절차를 모두 마친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이를 시작한다.
유치원의 일과 안에서는 이 시간을 '자유선택활동', '자유놀이시간'이라고 지칭한다. 한 시간 정도로 계획되어있는 시간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교사의 재량이다.
아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교사는 눈에 불을 켜고 가장 빠르게 움직여하는 하는 자유놀이시간.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자유롭게 시작하지만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자유선택활동 계획’을 하고 놀이를 시작하는 것이 필수 아닌 필수처럼 이루어졌다. ‘계획을 세우는 것’ 자유놀이 시간 동안 어떤 영역에서 놀 것인지를 수첩에 표시하는 것이다.
나는 이 활동이 아이들에게 계획과 실행, 평가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측면이 있다고 보지만 놀이중심, 유아중심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놀이를 하다 보면 한 가지 놀이에 푹 빠져 그 놀이만 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고, 계획한 놀이 영역에 가야 하지만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놀이 영역에서 시간을 정해 놀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영역에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놀이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놀이 계획 수첩을 사용하지 않았다.
희주가 레고 블록으로 구성물을 만든다. 희주와 함께 놀이하기를 즐기는 새빛이도 레고 블록으로 놀이하고 있다.
"선생님 이거 전시해도 돼요?" 희주와 새빛이는 열심히 만든 구성물을 들고 와 말한다.
"그럼~ 전시하면 친구들도 볼 수 있겠다"나의 말에 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한다.
정성스레 만든 블록 구성물을 부시지 않고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놓을 수 있다니 아이들에게는 너무 기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누가 망가뜨리면 어떻게 해요?"기쁨도 잠시 걱정끼 어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새빛이.
"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 전시회장에 가면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 라고 쓰여있던데?"
나의 말은 두 아이의 걱정을 사라지게 했다.
"만지지 마세요 표지판을 만들자!" 아이들은 미술영역으로 달려가 종이를 찾기 시작한다.
A4용지와 색연필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 만지지 마세요 써주세요"
"선생님이 종이에 글자 써줄게. 너희가 글자를 보고 따라서 써볼 수 있겠니?" 무조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해보며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은 내가 쓴 글자를 보며 삐뚤빼뚤 자신만의 글자를 써나간다. 그리고 '만지지 마세요' 안내판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구성물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에 세우고 그 옆에 안내판도 붙여두었다. 그리고 외친다.
"얘들아 여기 있는 건 부수면 안 돼!"
"만지지 말라고 붙여놨어!"
"선생님 라은이 가요 이거 안 빌려주고 혼자만 한대요"
은지의 외침에 역할 영역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무슨 일이야?"내가 묻자 라은이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은지는 당당하게 말한다.
"라은이가요 이거(강아지 인형) 같이 쓰는 건데 계속 안 빌려주고 혼자만 할 거래요"
아이가 갈등 상황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자 잘못된 친구의 행동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부른 아이는 잘못을 했을 경우가 적다. 하지만 교사는 두 아이의 말을 모두 들어 보아야 한다.
"라은이가 이야기해볼래?"나의 물음에 라은이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더 하고 싶은데.. 아직 많이 못 놀았어요."
라은이에게도 사정이 있다. 유치원의 놀잇감은 함께 나눠 써야 하는 것을 알지만 충분히 가지고 놀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은지도 강아지 인형을 많이 기다린 것 같은데. 놀이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라은이는 인형을 더 가지고 싶은 자신의 욕심과 친구와 함께 놀잇감을 사용해야 한다는 두 가지 마음에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라은이에게 얼마간의 생각할 시간을 준 뒤,
"그럼 긴 바늘이 6에 갈 때까지 더 놀다가 친구에게 빌려주는 건 어때?"
라은이가 조금 더 놀 수 있으면서 친구에게 놀잇감도 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라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의 수만큼 강아지 인형이 16개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놀잇감이 있지만 같은 종류의 놀잇감은 두세 개, 혹 한 개인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자유놀이시간에 발생하는 놀잇감 소유권 다툼은 너무 잦은 일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때 아이들끼리 스스로 해결해보는 시간을 주고, 적절히 개입해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며 오늘 라은이와 은지의 강아지 쟁탈전은 무사히 해결되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민식이가 게임판을 가지고 와 묻는다. 민식이에게 게임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나서 함께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민식이 먼저 주사위를 굴려볼까?" 주사위를 굴린 민식이는 주사위에 나온 숫자만큼 자신이 선택한 말을 게임판 위에서 움직인다.
민식이와 번갈아가며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움직이길 여러 차례. 높은 숫자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 주사위의 숫자 6이 보이게 내려놓는 민식이를 보니 재미있으면서도 슬슬 자리를 옮길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곳에 앉아 민식이와만 일대일로 놀이를 하기엔 내가 보아야 할 나머지 15명의 아이들이 있다.
한 자리에 계속 머문다면 아이들 간의 갈등 상황이나 놀이를 지원해 주어야 하는 상황들을 놓칠 수 있다. 고로 나는 민식이와 놀이할 다른 아이를 찾기로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때 과학 영역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주한이가 눈에 띄었고
"주한아 화분 보고 나서 민식이와 게임 같이 해보는 건 어때?" 라며 강요하지 않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나의 제안에 오케이를 한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민식이와 주한이의 게임 상황을 만들어주고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도울 수 있다. 주한이의 대답은 다행히 예스!
어린이집의 만 0세, 만 1세 반 같은 경우에는(영아반) 교사와 일대일로 놀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흔한 상황이다. 그러나 유치원은 다르다. 아이들의 연령이 증가할수록 교사와의 관계를 넘어 유아들끼리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교사는 자유놀이 상황 속에 또래들 간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 놀이하고 있는 아이에게 함께 놀이를 제안하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어울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함께 놀이 상대를 찾아보는 것 까지. 자유놀이 안에서 교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시도 한 눈 팔 새가 없다.
"선생님 점토 놀이하고 싶은데 점토가 없어요" 수미가 이야기한다.
미술영역 장에서 점토를 꺼내 주자 수미는 찍기 틀을 챙겨 와 점토놀이를 시작한다. 이를 본 몇 아이들이 "나도 점토 할래"라며 미술영역으로 온다.
"선생님 이거 뭐 만든 거게요?"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점토를 만지던 은수가 점토를 납작하게 펴더니 묻는다.
"글쎄, 납작한 피자 같기도 하고~"
"딩동댕동! 피자 맞았어요"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응답해가며 점토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미술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꽤 많다. 보통 여자아이들이 미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별보다는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미술활동을 창의적으로 하는 남자아이 현서는 점토 만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작게 자른 빨대를 꽂거나 지끈 등을 붙여 더 다양한 점토 작품을 만들어 냈다.
자유놀이시간에 아이들은 성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역할놀이, 블록놀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미술놀이이며, 언어영역에서 원하는 그림책을 찾아보는 것도 언어놀이가 된다.
점토를 더 넓게 펴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롤러를 제공해주었고, 점토에 색을 더하고 싶은 아이에게 색을 입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질문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놀이하며 생각하고 놀이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동물 모형을 움직이며 놀이하고 있는 시우, 하준, 경민.
각자가 맡은 동물로 상대편 동물을 치거나 밀며 동물 싸움놀이를 하는 듯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점점 더 과격해진다.
시우는 호랑이를 하준이의 코뿔소 위로 세게 누르며 “이얍 내가 힘이 더 세다”한다.
하준이가 시우의 코뿔소를 잡고 “저리 가!”하며 던진다.
이 바람에 함께 놀이하던 경민이의 발등 위로 코뿔소가 떨어졌다. 경민이는 발등이 아픈 듯 보이지만 덤덤하다.
“경민아 아프지 않니? 선생님이 보니까 아플 것 같은데”
나의 다정다감한 물음에 그제야 경민이는 아프다며 울먹인다.
이럴 때는 어린아이들이 더 어리게 느껴진다. 다행히 경민이의 발등은 살짝 빨개지기만 했을 뿐 심하게 다치지 않았다.
시우, 하준이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전, 두 아이끼리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네가 불편하게 해서 코뿔소 던진 거야” 하준이가 말한다.
시우는 “미안해. 같이 놀려고 한 거야”라고 답한다.
둘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더니 “선생님 이야기 다 했어요”라는 말로 화해했음을 알린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이 어떻게 할지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준아 친구가 불편하게 할 때 놀잇감을 던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던지지 말고 말해줘요"
"그래~ 하준이 말대로 불편하다고 말로 이야기해주면 좋겠구나”
약속을 정하고 두 아이가 경민이를 아프게 한 것에 대해 함께 사과하는 것으로 동물 싸움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다친 아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놀이 시간이 잘 마무리되어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게 된다. 아이가 등원한 순간부터 하원 할 때까지 만큼은 우리 반 16명의 아이에 대한 안전은 내 책임이다. 이를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윤미와 유진이는 병원놀이를 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이전에 병원놀이를 할 때, 낮은 책상을 가져와 접수대 표지판을 올려두고 병원의 입구를 구성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병원놀이를 할 때마다
"선생님 책상 어디 있어요?", "선생님 책상 써도 돼요?"
라고 물으며 낮은 책상을 끌어와 그 위에 병원 놀잇감들을 두고 노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윤미와 유진이가 병원놀이를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역시나 정해진 방법인양 두 아이는 병원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고민했다.' 아이들이 새롭게 병원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끝에 다양한 병원 내부의 모습 사진을 준비해 TV 화면에 띄워주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병원에는 또 뭐가 있을까? 사진을 보니까 소파도 보이고, 어~ 여긴 키재는 곳도 있나 보다"
나의 말에 유진이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말한다.
"선생님 내가 병원 갔을 때 책 볼 수 있는 곳도 있었어요."
이제 병원을 새로운 자료들로 구성해 볼 때이다.
"그럼 우리가 생각한 병원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윤미와 유진이는 빅 와플 블록을 가져와 "소파는 이걸로 만들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 와플 블록 소파가 완성되었고 그 옆에는 벽돌 블록으로 만든 침대가 생겨났다. 병원에 다양한 공간이 생겨났고 그만큼 아이들의 놀이는 활발해졌다.
민지와 하민이도 놀이에 참여했다.
낮은 책상으로 만들어진 접수대에서 환자를 부르는 간호사 민지. 그 앞 와플 블록 소파에 앉아 대기를 하는 손님 유진와 하민이. 진료가 시작되자 아픈 환자를 벽돌 블록 침대에 눕도록 하고 치료를 하는 의사 윤미.
참 재미있다.
"선생님 쉬 하고 싶어요", "선생님 손 닦고 와도 돼요?", "선생님 물 마시고 올게요", "선생님 이거 도와주세요", "선생님 이건 내가 만든 로봇이에요. 어때요?", "선생님 같이 놀아요", "선생님 병원 놀이할 건데 침대가 필요해요"
아이들의 무수히 많은 질문과 제안과 말들에 나는 하나하나 대답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벅차고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할 수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대답을 해주고 도움을 주며 놀이가 확장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놀이시간이 대략 한 시간이 다되어 간다.
"OO반 놀이시간 10분 남았어요. 긴 바늘이 12에 가면 정리할게요"
아이들이 놀이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리시간을 미리 안내한다. 나의 놀이시간 종료 예고는 아이들에게
"에이~ 더 놀고 싶은데"라는 아쉬움 섞인 탄식이나 "네!"라는 우렁찬 대답이 나오도록 한다.
"OO반 약속한 시간 다 되었다. 이제 정리할게요"
아이들은 정리를 시작한다.
정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자신이 가지고 놀던 놀잇감을 제 자리에 잘 정리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갑자기 물을 마시러 간다거나 소파나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는 아이도 있다.
이럴 때는 칭찬의 힘을 사용한다. 놀잇감 정리를 잘하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아이는 더 열심히 정리를 하고,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름을 듣기 위해 놀잇감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놀잇감의 경우는 아이들끼리 힘을 합쳐 옮기기도 하고 넓은 보자기의 경우는 아이들끼리 양 끝을 잡고 함께 접기를 시도한다. 자연스럽게 협력의 상황이 유발되는 정리시간이다.
아이들이 놀잇감 정리에 만전을 다하고 았으면 교실은 점점 더 깨끗해지고 정돈된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다음 일과를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