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일

임산부에서 엄마로

by 별리

#1. 기억하려고 임산부였던 나.


뱃속에 36주라는 기간 동안 함께 있던 아기들. 응급 수술을 하기 전까지 내 커다란 배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일부로 내 손에 커다람을 느끼게 해 주며 아기들의 움직임을 알게 해 주던 배는 지금 사라졌다.


“내 배가 얼마큼 컸었지?”


나는 임신 초기에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 매우 힘든시기를 보냈고 임신 말기에는 대략 한 달의 시간을 침대와 함께 했으며 출산 후에는 내 몸이 타는 것 같은 아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기간에 더욱 많은 나를 남기지 못해 남아있는 아쉬움의 감정들을 긁어모으고 있다.


이게 아쉬워할 일인가 싶지만,


지금 나는 임산부였던 내가 망각되지 않기를 바라며 임신의 조각들을 찾아보는 작업을 통해 감정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왜?


내 인생에 다시없을 수도 있는 시기가 끝났다는 사실에 밀려드는 허무함 더하기 임신기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면서 출산 이후의 시기만 기대했던 나를 반성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어서. 그 감정을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매주마다 내 배가 얼마큼 커졌는지 같은 옷을 입고 촬영을 해두었다. 임산부들 사이에서는 이를 ‘주수 사진’이라고 하는데, 나도 일반적인 임산부들 대열에 열심히 합류했던 터라 주수 사진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내 배가 커갔던, 아기들이 잘 자라나고 있다는 성장의 기록이 되어주었다.

임신의 기록

태동 영상도 있다. 배안에 아기들이 무언가 움직임을 취했을 때, 그 움직임은 태동이란 이름으로 찾아왔고 배가 움직이는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다행이다.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고, 임산부인 나를 기억하게 해 주어서.

만약, 아주 만약에 또다시 임산부가 된다면 그때는 그 시기를 좀 더 힘 있게 보내고 싶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온전히 공감할 것이고, 호르몬이 나를 지배하려 할 때 그와 협상하겠다. ‘우울함은 반의 반만’이라고 말이다.


#2. 하루하루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수술대 위.

나를 살짝 잠에 취하게 하던 마취가 제 소명을 다 한 듯했을 때 우렁찬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나를 깨웠다.


힘찬 목소리로 ‘응애응애’ 울 던 두 가지의 언발란스 한 화음이 수술실 안을 꽉 채웠을 때. 이 때는 내 인생에 사라지지 않을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임을 확신했다. 내 삶에 들어온 아기들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이자 내 아기들이 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순간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아픈 몸을 회복하느라 하루하루 나에게 초점을 맞춰 ‘내 몸이 아프지 않길’, 내일은 더 나아지길’이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아기들을 볼 수 있는 시간과 모유수유 시간에는 아기의 얼굴을 보고 연신 감탄을 하느라 나의 감정이 어떤지 제대로 돌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몸이 회복되어가고 조리원에서 혼자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서, 빠른 시간의 흐름이 던지고 가는 아련한 감정이 저 밑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들이 너무 빨리 큰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오늘 막 아기들이 태어난 지 23일째인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생아인데 그새 너무 많이 자라 버린 것이다. 지금도 물론 매우 작지만, 처음보다는 분명 살이 붙었고 커졌다.


이 사실은 눈으로, 아기를 안았을 때 느껴지는 무게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아기들을 담아 온 핸드폰 속 사진을 통해서 아기들의 성장은 확실시되었다. 작게 태어난 우리 아기들이 잘 먹고 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기쁜 일이고 다행스러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신생아 시절이 지나가고 있음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너무 작고 예쁜 내 아기들의 이 순간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금세 날아가버릴까 봐. 더 많은 동영상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고 눈을 크게 떠 아기들의 모습을 한 가득 담았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아쉬움을 달래려는 나의 노력은 아기들의 하루를 놓치지 말고 기억하자는 다짐이 되었다.


작고 작은


#3. 너희가 엄마 뱃속에 있었다니


아기를 안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얼굴 속 오목조목 자리한 눈, 코, 입, 귀

그린 것 같은 눈썹

까만 머리카락

하얀 속싸개 속 앙증맞은 손과 발

작은 몸


이런 예쁜 아기가 내 뱃속에 있었다니 오늘도 신기함의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 아기의 모습을 한 없이 지켜본다.


조리원 신생아실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아기가 다리를 올려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팔을 안으로 접으려고 한다.) “이렇게 팔이랑 다리를 웅크려서 뱃속에 있었지요”

“아기가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그 자세로 굳어서 팔, 다리를 펴준다음 싸개로 감싸주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새로운 것을 또 하나 배우면서도 뱃속에 있었을 자세를 실제 눈으로 보니 초보 엄마는 안쓰러운 감정에 휘둘렸다.

‘저렇게 팔과 다리를 모으고 엄마 뱃속이란 작은 공간에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도 둘이서!’

그리고 역시나 이런 감정은 행동을 취하게 했다. 아기가 모자동실에 오면 더 많이 팔로 안아주게 눈으로 바라보게 했고, 아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놓칠세라 이렇게 글을 쓰게 했다.


내 몸에서 두 명의 아기가 나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끔은 믿기 질 않고 신기하다. 커가는 아기들을 보면 더더욱 이런 느낌은 또렷해질 것 같다. 지금은 무조건 성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기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면, 나의 품 속에서 꿈틀 대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던 신생아 시절의 아기 때가 분명 그리워지리라.


이젠 엄마 뱃속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품속에 막 뛰어든 아기들. 언젠가 세상의 품으로 가리란 것을 안다. 그러나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한 지켜주고 아껴주고 충분한 사랑으로 이 세상의 당당한 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예쁘고 소중한 내 아기들.

이런 아기들이 나의 뱃속에 있었다니!

오늘도 신기함과 감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전 09화모유수유에 대한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