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과 설렘의 공존
외부에 볼 일이 있어 조리원에서 잠깐의 외출을 했다. 한 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의 외출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든 생각
‘아 보고 싶다 내 아기들’
바로 택시를 타고 조리원에 도착했다.
신생아실 창문을 바라보며 우리 아기들이 있는 쪽을 찾아보았다. 곤히 잠들어 있는 다복이와 또복이.
정말 짧은 시간 외출이었을 뿐인데 왜 너희가 보고 싶었을까.
밖으로 나갔을 때
파란 하늘과 색색깔 꽃들이 봄을 있는 힘껏 알리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만 그 바람은 차지 않았다.
시원함이 섞인 따스한 바람이라고 해야 하나.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이랄까.
꽃샘추위도 어느덧 봄의 계절에 꼬리를 내리고 사라진 그야말로 화창하리만큼 밝은 색의 봄날.
‘아 봄이구나’ 조금의 추위도 남지 않은 그런 계절이 되어 시간이 흘렀음을 느낌과 동시에 ‘이제 조리원을 나가 집으로 돌아가면 현실 육아가 시작되겠지’라는 얕은 한숨이 나온 건 단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조금 후 이 맑은 날을 아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엄마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니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육아를 하고 있는 누군가는 나의 이 감정과 생각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 진짜 육아를 경험해 보면 달라질 거라 확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일보다 오늘을 사는 지금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조리원을 나가 집에 돌아가면 힘듦이 닥쳐오겠지만 그 또한 즐겨야겠다고 자신을 토닥이게 되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나에게 행복한 기운을 마구 선물해 준 것처럼 긍정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엄마이지 않은가.
한 시간 남짓의 외출 시간은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엄마 마음이 무엇인지 느끼기에도 말이다.
조리원에서 총 3주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이틀 뒤면 퇴소를 한다. 이 시간들이 나의 몸을 많이 회복시켜주었을까. 이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기들이 큰 건 분명했다.
시간의 만료. 아! 또 하나의 현재가 추억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 이틀. 늘 그렇듯 이제야 사소한 것 하나하나들이 더 소중해지고 아쉬워지고 남기고 싶어 진다. 매번 그러하듯
청소하지 않아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깨끗하게 정돈되는 방, 매번 다른 음식들로 내 몸에 가득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던 식사와 간식, 우리 아기들을 돌봐주시면서 육아 팁들을 알려주시던 선생님들, 산모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도구들.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비록 내가 돈이라는 수단으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할지라도 특히나 사람이 주는 따뜻한 온정은 대신할 수 없으리라.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정말 아기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아기들을 다루는 것이 매우 수월해 보였지만,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아기들을 보는 건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아기들을 최대한 잘 돌봐주시려 했고, 산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아기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아기가 크게 울어 도움이 필요하면 방에 찾아와 아기를 달래주시기도 했다. 선생님 품에 안기면 어쩜 저렇게 뚝 그칠 수 있는지! 초보 엄마는 선생님의 행동과 말투들에 집중하며 그 모든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스펀지가 아니라 선생님의 언행을 쏙쏙 빨아들이기 역부족이었지만 내 특기인 ‘메모장에 적어두기’ 신공을 발휘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특히 우리 둘째 또복이를 많이 예뻐해 주었다.
“또복이 사라지면 내가 데리고 간걸로 알아요”
라며 또복이를 꼭 안고 농담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아기들이 얼마나 컸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지 말해주시기도 하며 내가 조리원에 더 머물고 싶게 만들었던 선생님.
아직 남은 기간 동안 선생님들을 통해 육아에 대한 궁금증을 좀 더 해소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고 싶다.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조리원에서 만난 산모들과도 첫 만남 때보다 많은 교류가 생겼고 단체 채팅방도 개설하였다. 여섯 명이 함께하고 있는 채팅방.
아기에게 먹일 분유부터 기저귀, 놀잇감 등등 제품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의 나이, 하는 일, 사는 곳 등등 기본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다른 날짜에 퇴소를 하며 명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훗날 만남을 기약했고 단체 채팅방을 통해 연락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조동 모임’의 시작이 되는 걸까? 사실 나가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여섯의 산모와 일곱의 아기들이 외부에서 만날 가능성은 있다.
조리원에서 한 주를 더 있을까 고민했다. 더 있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국 3주까지만 조리원 생활을 하기로 하고 한 주 더 연장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 빨리 가나 늦게 가나 집에서 우리 아기들이 적응할 시간은 필요할 것이고, 나는 똑같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 건 당연하다. 아기를 잠깐만 봐도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집에 가면 하루 24시간을 아기와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여기에 보태서 이미 육아를 경험한,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말해왔다.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은 거야”
라고.
그래서 조리원 생활의 끝나감이 아쉬운 건 당연지사. 여기에 집에서의 육아는 걱정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근거림이 동반되었다. 우리 집에 아기가 있다고 상상만 했는데 이 상상이 현실로 펼쳐지게 될 거란 사실이 두근거림을 가져온 것 이리라.
어떤 일이든 그러한 것 같다. 가령 이직을 하게 되어 그동안 정들었던, 익숙했던 직장을 마무리한다고 하면 시원함과 아쉬움이 한대 엉켜 시원섭섭함의 감정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이직은 또 다른 곳에서의 시작이기에 설렘의 감정도 빠뜨릴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설레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병원생활과 조리원 생활을 합쳐 대략 한 달의 시간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시점에 도달해 있고 이 생활들이 끝나감에 아쉬움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으려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데 이 파도가 나를 휩쓸고 사라지게 두진 않을 것이다.
아기들과 함께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집에서의 생활이 마냥 힘들진 않을 것이다. 아기들이 주는 기쁨을 믿으며 설렘이 아쉬움의 파도를 밀어내도록 하려고 한다.
남은 이틀, 산후조리원에 왔으니 푹 조리하고 돌아가자! 그리고 아기들이 자신의 집에 도착했을 때, 둘이 아닌 네 가족이 되어 맞이하는 집에서 힘찬 시작을 해보자. 할 수 있을 것이다. 닥치면 하게 되는 것이 살아가면서 얻은 교훈 중 하나라면 하나이지 않은가. 파이팅 쌍둥이 엄마 그리고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