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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46)

2030 세대의 돈벌이와 현실

by 김 미 선

며칠 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낼모레 오후 2시에 사람이 갈 거예요. 욕실 청소하러."

"별안간 무슨 욕실 청소니? 내가 매일 닦는데."

"그래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한 번 맡기면 더 깔끔할 거예요.

천장이나 높은 벽면은 엄마가 잘 닦지 못하니까."


휴일 오후가 되자 득덜같이 청소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보니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청년이었다.

의외였다.

아줌마나 아저씨가 올 줄 알았더니 웬 젊고 건장한 젊은이다.

양손에 장비를 잔뜩 들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겉모습으로 봤을 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욕실을 안내하고 내가 잘 닦을 수 없는 후드나 천장, 키 높은 샤워기 등을 좀 닦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일일이 지켜보면 작업에 방해가 될까 봐 그 자릴 피해 주었다.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할 일을 하다가 30분이 경과되자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


어머나!

후욱 끼쳐지는 락스냄새.

화장실은 물론 안방 전체가 가스실로 채워졌다.

도저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락스냄새는 지독했다.

완전 독가스 구역이 되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이거 락스냄새가 너무 심한데요."

했더니 공기정화 분무기로 칙칙 뿌려서 냄새를 희석시켜 주긴 했지만,

그 지독한 화학성분은 쉽게 날아갈 것 같지가 않다.


청년은 머리도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옷도 여기저기 물먹은 흔적이 뚜렷했다.

어딘가 덜 닦은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다.

잠깐 서있어도 어질어질하고 목이 아파오는 상태다.

그저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고맙고 측은했다.


"아휴! 더운 날 고생했어요. 좀 덜 독한 락스를 쓰면 안 되나요?

본인도 좋고 부탁한 사람도 좋게요."

"이건 저희가 쓰는 전용세제라서요."

쑥스럽게 웃으면서 핸드폰으로 찍은 청소하기 전, 후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나 마나 일일이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내가 고생했다는 말을 거듭하자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덩치는 컸지만 무거운 기구들은 청년의 어깨를 짓눌렀다.

심한 락스냄새로 목과 머리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

아무리 젊다고 해도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미간을 좁히게 마련이다.

청년은 그저 담담했다.

`이것이 내가 매일 하는 일인데 뭘.`

체념 어린 표정이 더 연민스럽다.


청년을 보내고 나서야 시원한 음료수라도 건네주지 못한 실수를 후회했다.

냄새로 인해 혼미한 정신상태로 갈팡질팡만 했을 뿐.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락스에 젖은 머리와 옷은 청년의 뒷모습을 더 짠하게 만들었다.


아들보다 더 어린 청춘.

그가 화장실을 닦는 현실은 지금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른 돈 벌자. 얼른얼른 돈 모으자. 얼른 부자 되자.

잇새에 `돈` 이란 단어를 깨물었을 것이다.


다음에 갈 집은 까탈스럽지 않길 바라기도 했을 터다.

그래서 젊은 남자의 노동력엔 눈물도 땀도 락스냄새도 함께 배어있다.

십만 원을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종종걸음을 옮겨야 하는 젊은이에게

당장의 대안은 화장실 청소밖에 없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평생 화장실 청소만 할 건 아니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지탱하는 일용직 노동자.

그 자조가 앞날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 42만 명이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쉬었음` 으로 표기되는 현실이다.

17만 4000명이 대졸 학력을 소지하고 있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부모들의 피땀 어린 뒷바라지도, 대학 졸업장도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취업전선에서 수없이 낙방하고 이제는 자포자기 아니면 화장실 청소원으로 전락했다.


젊은 날 무엇이든 자신의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청소원이면 어떻고 배달원이나 택배기사면 어떤가.

경험은 긴 생애에서 분명 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제는 영원히 자신의 가치를 펼쳐놓지 못할 환경이다.


경력사원 위주로 채용의 형태가 바뀌었고, 기업들이 전문인력을

뽑을 여력이 사라지고 있다.

취업의 문은 닫히고 그로 인해 결혼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고 미래다.

석박사도 필요치 않은 시대에 고학력은 더 이상 쓸모를 잃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5년 동안 `쉰` 청년들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44조 5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나라, 개인이 그만큼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퇴보를 걸었다는 의미다.

청년들의 구직의욕이 꺾이고 그 후폭풍 또한 나라 전체를 암울하게 한다.


더운밥 식은 밥 가리지 않게 된 젊은이들이 결국 화장실 청소라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지푸라기라도 낚아채야 할 절박함은 무력감을 몰고 온다.

2030 세대의 돈벌이와 현실은 지금 이렇게 어둡다.

그 어둠을 헤칠 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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