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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일상의 가치
by
김 미 선
Oct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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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버스가
열다섯 대
나 지나갔다.
내가 누구란 걸 밝히지도 않은 채.
조선남자 엿보기
란 글이 브런치의 첫 출발점으로,
버스 열다섯 대는 글이 15회가 되었다는 의미다.
고부 그게 뭔데요? 시리즈를 마치면서 다음 회부터는 잡화점을 차려놓겠다고 했다.
그동안 긴 시리즈를 엮어내느라 다른 글을 섞을 수 없었다.
시리즈 특성상 중간에 다른 것을 올리면 글의 흐름이 끊어지니까.
이제는 각각의 낱 글들을 올린다는 것인데 오늘이 잡화점 개업 첫날이다.
시리즈가 아닌 낱 글들을 매주 수요일마다 엮는다는 걸 독자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엮어질 잡화점에선 눈물도 웃음도 다 버무려 내놓겠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살아온 날들을 수놓을 것이다.
작가 장강명은 나이 든 사람들이 글을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긴 세월 속에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삭혀온 것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마땅한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경험이
나이 든 이들의 큰 장점이다.
나이 든 이들에겐 개인사 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엮어 온 증인이기도 하다.
내가 브런치에서 처음으로 글을 쓴 것은 정확하게 올 6월 21일이다.
첫 화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데드 라인에 쫓기듯 글을 써왔다.
1화로 조선남자 시리즈를 써놓고 독자들 반응을 기다렸다.
주책맞게 남편 얘기를 쓴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을까?
처음 글을 쓰는 사람처럼 머쓱하고 부끄럽고 불편했다.
다행히 반응은 그리 썰렁하지 않았다.
이곳은 낯설고 처음이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써왔다.
이미 출간 경험도 있다.
여럿이 공동 집필한 것도 있지만 단독으로 책 한 권을 냈었다.
다만 출간이라는 말이 어째 낯 간지러워서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도 일체 그것조차 밝히지 않았다.
책을 굳이 앞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쓰자.
여긴 처음이니까.
이렇게 브런치에 아는 이 없이 스며들었다.
서먹하던 놀이터에서 동네 주민들이 생기고 소통이라는 댓글 달기가 시작됐다.
여기서 내 글을 읽어주겠다는 독자들과 교류하게 된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
독자들을 위해서 수요일의 약속을 지켜야 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글은 써야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곳은 전문적인 글보다 정보성 글이 콘셉트에 맞는다.
내 글은 이곳에 써야 맞겠다는 생각으로 입성을 했다.
브런치가 뭐라고 기를 쓰고 언덕을 기어올라왔다.
노구를 이끌고.
언덕에 올라와 보니 작가들이 까맣게 많다.
울타리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작가들도 수두룩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동질감도 있지만 부담도 껴안아야 한다.
글 다운 글을 써야겠다는 심리적 자극도 적지 않다.
또다시 책 한 권에 도전하고픈 생각이 두둥거린다.
우선 약속했던 수요일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아직 매거진도, 북도 만들지 않고 생으로 글을 올려놓고 있다.
연일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가 손짓을 하지만 올 해는 틀렸다.
내년에는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노력과 필력이 요구된다.
눈은 침침하고 갈길은 멀고 배는 고프고 가랑비는 내리고.
우산도 없이 혼자 뛰어가야 한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세상이 다 끝나도 그래島(도)라는 섬만 살아있으면 동동 떠다닐 수 있다.
마음이 고갈되지 않으면 샘은 마르지 않을 테니까.
끊임없이 독서하고 쓰고 그렇게 내 생활은 이어갈 것이다.
앞으로 취미로 배워둔
유화
도 틈틈이 올릴 생각인데 무지무지 바빠서
요즘 그림 그릴 새가 없다.
독자들이 보는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양수겸장이다.
이 그림은 2019년에 그린 그림인데 풍수에 좋다고 해서 그려봤다.
해바라기 그림은 돈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돈 들어온다는데 싫다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걸.
그것도 그것이지만 노란색이 밝고 집안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 기분까지 좋게 한다.
플라세보 효과라고 해야 할까.
이 작품도 아들네 집 현관에 턱 걸어줬다.
젊은 부부가 해바라기 쳐다보듯 일편단심으로 살아가 보라는 격려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안정이 필요하다.
앞치마 두르고 이젤 앞에 착 폼을 잡고 앉아서 마음을 캔버스에 집중시켜야 한다.
거기다 꼭지 모자라도 하나 쓰고 앉았으면 화가 포스다.
허둥대지 않고 느긋하게 창밖도 내다보면서 여유를 부린다.
기차 시간 놓칠세라 그림을 그리면 나비 다리가 열개 가 되고 벌 다리는 잘린다.
꽃도 서리를 맞는다.
마음이 혼란하면 길게 그릴걸 짧게 그리고 짧게 그릴 걸 길게 그린다.
그림도 영혼을 탈탈 털어내는 작업이다.
심리적 안정을 기하는 것은 그림이나 글이나 같다.
나는 전생에 탈곡 전문가였는지 글이나 그림처럼 영혼 터는 일만 찾는다.
그림은 그나마 혼자 작업을 하다가 지루하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림이 자꾸 찌그러질 때는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기분을 생기발랄하게 부추긴다.
혼자 노래도 불렀다가 음악도 틀었다가 창밖을 내다보다가 발광이다.
이 말은 우리 시어머니한테 배운 말이다.
조금만 당신 맘에 안 들면 발광한다고 소릴 지르셨다.
그림이 제 갈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날엔 혼자 막 웃는다.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저 집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사는 걸로 유추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남편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웃다가
뜨악한 그 남자의 시선과 마주치고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발광 아닌 발광을 해가면서 겨우 그림 한 점을 그리고 나면 진이 빠진다.
발광과 진 빠짐을 거듭하면서 그린 그림 중에 작품이란 표지를 붙일 만큼
괜찮은 그림이 나오면 그건 아들네 소장품이 된다.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 준 후 대 만족하길래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그림을 갖다 줬더니
이젠 가져오지 말란다.
이런, 이런.
남들은 그거 한 점 안 주려나 고개 빼고 쳐다보는데.
흔하면 값어치가 하락하는 원리가 여기서도 작용한다.
희귀해야 덥석 한 점만 달라고 졸라대겠지.
내가 다신 그림 주나 봐라.
그 그림이 내 사후에 얼마가 될지 알고나 그러는 거냐고 혼자 씩씩거린다.
지금은 세계적인 화가로 늘 화단의 중심축을 이루는 `고흐`도 애초엔 그림
한 점이 팔리지 않던 무명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노란색이 주색을 이루고 있는데 압생트(酒類,술종류) 에 들어있는 산토닌 성분이
황시증을 불러온 결과였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였기 때문에 집도, 카페도, 풍경도 모두 다 노랗게 물들였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무명시절의 아픔이 노랑으로 표출되었다.
아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덜 서러운 것은 내가 그림으로 먹고살 일이 없다는 거다.
그냥 음악이나 틀어놓고 고상한 취미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다가 누굴 이쁘게 봤다면 한 점 주고 또 한 점 퍼내고 그렇게 여유가 있어서
덜 서러운 걸 거다.
만약에 `고흐`처럼 그림은 그려놨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서럽고 서러울 것이다.
무명을 딛고 찬 밥 신세를 벗어나 오늘날 우리들 주변을 맴도는 `고흐`.
나도 `고흐`처럼 유명해지지는 않더라도 늘 발전하는 그림이며, 글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혹시 누가 알아.
저 노란 해바라기가 세월이 흘러 갤러리에 걸리게 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들은 엄마를 무시한 걸 깊이깊이 후회하겠지.
꿈이 너무 야무지긴 하지만.
암튼 나는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었다.
한쪽은 길디 긴 책상을 갖다 놓고 한쪽엔 컴퓨터와 책들을 갖춰놓았다.
언제든지 그 방에 들어가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
집안에 아무도 없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조선 양반 께선 사업하느라 바쁘고 마누라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고생한 덕에 이젠 생활고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글과 그림이 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사는 가치를 이런 류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주로 에세이를 쓰는데 가끔 시 같지 않은 시도 쓴다.
장르 불문하고 쓰고 싶지만 잡초밭을 만들기 싫어 자제하는 중이다.
글을 무조건 많이 쓰기보다 진중하게 쓰고 싶다.
누구나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시간과 치킨 게임을 하다 결국 사람이 물러서게 되어있다.
아무도 이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든 이들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 한 편을 올려본다.
식은 꿈
아침에 먹다 만 고구마
한 개
식탁 위에서 혼자 뒹군다
누가 뭐라지도 않았는데
쿨렁쿨렁 서럽다
함께 살자고 엉켜있던 밥알은
고동처럼 고구마 등위에서 굳어있다
서로가 뜻이 없다
먼 옛날 푸릇했던 시절이 그 둘에게도 있었지
땅속에 코 박고 누웠을 때
고구마 줄기가 한 말
내 팔자가 젤 좋다
벼 이삭도 으스댔었지
거머리가 핥고 간 자리, 간지럼을 태우던 자리
거기서 쌀알이 되리라던 꿈.
이 꿈 저 꿈 다 저물어 버린 고통의 자리에서
둘은 말없이 들끓었다
회오리 치는 격정의 김서림 속에
꿈 없는 몸부림으로
아! 아무도 뭐라지 않아도 왜 이렇게 서러운지
고즈넉이 식어가는 딱딱한 주검 앞에서
가을이 갈갈 갈 익어간다
고구마와 쌀의 한 창 시절 봄은 어디로 갔을까
누구나 그 누구나 호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고구마와 쌀의 싸늘한 주검이
나이 든 이들의 가을 길을 그려내고 있다.
밥 할 때 고구마를 얹어 쪘는데 이런 허무주의가 나타났다.
이 시는 동서커피에 잠깐 떠 있다 찌그러졌다.
9년 전에 시리우스는 못됐고 구름에 가려졌던 초승달은 됐었다.
이제 추석도 지났겠다 본격 가을이 시작됐다.
마음속으로 풍성한 가을을 불러들여 글을 좀 살찌워야겠다.
다음 회도 구멍가게에 차곡차곡 글이란 잡화를 차려 놓으려면 또 쓩 날아가봐야겠다.
슝! 쓩쓩.
날아가다 심심하면 가을 노래 한 곡 벌판에 휘뚜루마뚜루 흩뿌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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