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걱정
오늘은 결혼 그 엇박자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야겠다.
내게도 딸이 한 명 있다.
결혼한 아들의 누나다.
딸은 서울에서 혼자 옷 장사를 하며 산다.
돈벌이의 고단함을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고 있는 중이다.
이 딸이 내겐 쓰림이다.
딸은 몸도 정신도 씩씩하다.
그런데 왜 쓰림이 되었을까.
다름 아닌 결혼을 안 하고 혼자 평생을 살겠다고 한다.
제 동생은 결혼을 해서 어우렁 더우렁 날마다 웃음 떠날 날이 없는데,
혼자는 그리 웃을 일이 없을 것만 같다.
병아리 같은 자식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없는 쓸쓸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라서
마음이 쓴 거다.
장사가 잘 되든 돈을 많이 벌든 친구가 많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오롯이 그들만의 섬이(가정) 없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하다.
결혼한 친구들이 저마다 울타리를 이루고 살면서 느끼는 고뇌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단순함 속에서 또 다른 단순함이 고통이 된다.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점이 있다.
뭐 하러 굳이 결혼을 해서 피곤하게 사냐는 거다.
혼자 독립하여 얼마든지 경제활동을 하면서 옥신각신 하지 않고 살 수 있단다.
결혼이란 굴레 안에서 힘들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자유도 없고 고달픔만 풍성하고.
결론만 따진다면 맞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의 태평함과는 무관하게 엄마의 마음은 달랐다.
한 해 한해 나이테가 보태질 때마다 내 마음속 나이테도 속절없이 출렁거렸다.
쟤를 어떡하든 결혼을 시켜야 내 할 도리를 다 한 거라고,
그게 내 할 일이라고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들볶았다.
혼자의 마음도 오락가락하고 변동이 심하여 내가 나를 모를 때도 많다.
둘이라면 더 복잡하고 갈등 요인으로 얽힌다.
서로 얼굴 붉힐 일도 많고 언성 높이다가 울고불고할 일도 다반사다.
우리네 인생이 꼭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세상사 흰색이 있으면 분홍색이 있고 쓰림이 있으면 그 이튿날 밝음이 찾아온다.
결혼으로 인해 매사가 눈물범벅만 있다면 이 세상 그 누가 결혼이란 미친 짓을 하겠는가.
결혼을 해보지도 않고 단순하게 힘들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큰 문제다.
어렵게 살아온 엄마의 삶에서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일찌감치 깨져버렸을 테다.
이 땅의 딸들이 한결같이 부르짖는 말은 "나는 엄마처럼 안 살겠다."는 구호를 보더라도
엄마는 딸들을 지레 겁먹게 만든 표본이 될 거다.
아무리 그랬어도 나는 이런 딸을 보다 못해 혼자 마음이 바빠졌다.
딸이 30대 초반 때 지인들을 통해 여기저기 중매의뢰를 해두었다.
지인들의 소개 의뢰가 들어오면 사진을 덥석 받아서 딸 핸드폰으로 전송하고,
"어때, 인상이 괜찮지 않니?"
혹시나 딸이 애초부터 보이콧을 할까 봐 선수를 치곤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괜찮은 사람 같으니 한 번 봐보기나 하라고.
종용이라기보다 애원이고, 호소이고 강제성이다.
유아교육 기관에서 일하던 딸이 애들은 잘 키울 것 같다고 주변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인들과 한데 뭉쳐서 결국 한 사람이 첫 지목되었다.
낚싯바늘을 드리우게 된 사람은 고등학교 선생이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딸이 스르르 팔을 내렸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소개팅에 나섰던 딸이 전화로 하는 말이 "아휴, 엄마 어디서 50대 같은 아저씨가 나왔어요."
설명에 의하면 얼굴은 시커멓고 배는 남산이란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뛰어나오고 싶었지만 소개해준 분을
생각해서 참았단다.
그런 사람을 소개선상에 올려놓았느냐고 쌕쌕거렸다.
"암만 그래도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같은 사람은 좀 그렇지."
나는 딸에게 동정표를 던지면서도 물밑에서는 다음 주자를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두 번째 주자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점 찍혔다.
지인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이미 집도 장만해 두었고 부모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라나.
집이든 부자든 그건 나중 문제이고 우선 사람이 맘에 들어야 성사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도 싫다는 애를 등 떠밀어 또 약속을 잡았다.
한 겨울이었다.
몹시 춥고 바람 부는 날 어떤 남자를 만나보겠다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나갔던 장소,
거기엔 웬 가수 싸이가 앉아있더란다.
(싸이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것뿐 가수 싸이와는 상관없음)
또 돌아와서는 "엄마 이젠 소개팅 시켜줄 생각 마세요."
누굴 만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후 소개팅을 잊고 지내다가 또 중매가 들어왔다.
세 번째 상대는 연구원이란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중매도 한 때다 싶어 또 딸을 살살 꼬셔대기 시작했다.
"얘 한국 사람은 삼 세 번이야. 세 번째는 이상하게 잘 풀린다니까.
이번 한 번만 더 봐봐 응?"
이미 30살이 넘어버린 딸이고 결혼과는 담을 쌓겠다는 사람을 자꾸만 꼬드기고 있는 엄마도 참 한심했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엄마 맘 상할까 정말, 정말로 어떤 요구도 거절하지 못한 착한 딸이다.
엄마라고 해서 왜 옳은 소리만 했을 것이며, 엄마라고 왜 제 마음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언행만 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딸은 속울음을 울었을 뿐 엄마를 맞받아치지 않았다.
그냥 엄마 마음이 그런가 보다 수긍했다.
이번에도 엄마 마음을 받아들이고 또 현장으로 나갔다.
세 번째 소개팅을 내 보내고 나는 시험장에 아이를 들여보낸 고3 엄마가 되었다.
지금 쯤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궁금하고 긴장되었다.
이번에는 잘 됐으면 좋겠단 바람도 빵빵하게 차올랐다.
점심때가 한창 지나고 있어도 아무 소식이 없길래 잘 되어가나 보다 내심 좋아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딸이 문자와 전화로 내게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는 서로 맘에 안 든 거였다.
상대는 여자가 너무 말수가 없고 재미없는 형이고,
딸 입장에선 남자가 너무 수다스러운 형국이었다.
집으로 곧장 가자니 마음이 복잡해서 친구를 불러냈단다.
가슴속으로 불어 치는 태풍을 좀 잠재우고 싶었나 보다.
거기서 자꾸만 엄마 때문에 낯선 남자를 만나러 나갈 수밖에 없는
신세를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다쟁이 아닌 딸도 그날은 마구마구 말을 퍼내고 싶었을 것이다.
세 번의 기대는 이렇게 빗나갔다.
문제는 다 인연이 닿지 않은 거였다.
인연이었다면 50대 아저씨 모습은 건강미 넘치는 근육남으로,
싸이는 조각남 조인성으로, 수다쟁이 연구원은 재밌는 개그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감정 모드가 널을 뛰고 널 뛴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네 정서다.
청개구리. 연두색으로 칠하려다 멈춤.(필자 그림.)
이것으로 중매쟁이를 섭외할 필요도 선을 보라고 종용할 염치도 없어졌다.
애초에 맘에도 없는 사람에게 선을 보게 한 것이 잘못이다.
시간 낭비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거다.
엄마가 졌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이제 딱 40살이 됐다.
올해부터 한 살이 줄어들었으니 서른아홉 살.
적지 않은 나이다.
결혼도 않고 불혹을 맞다니 엄마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쓰리다.
부모는 언제까지 마냥 살 수는 없다.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참말이다.
그러면 남편도 자식도 없이 쓸쓸하게 혼자 살아갈 딸을 생각하면 속이 볶인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지금이라도 누군가를 데려와 `결혼할게요.`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꿈을 꾼다.
요즘 세태가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뿐이랴.
노총각 노처녀가 가을 들판에 메뚜기처럼 많은 게 현실이다.
툭하면 무슨 유행처럼 결혼을 안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여 부모 마음을
까맣게 물들이는 불효? 자식들이 많다.
혼자 보다 둘, 둘 보다 셋이나 넷과 함께 가족을 이룬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는 개념보다, 고통이라고 인식하는 한 결혼은 점점 그네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이 사회가 지금도 그렇지만 1인 가구의 시대가 곧 도래한다.
어쩔 것인가. 이 적막한 세상을.
명절에도 동생네 가족은 고소한 참기름 병을 들고 좋아라 했다.
딸은 그것조차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도대체 누굴 위해 참기름이 필요할 것이며 누굴 위해 주방을 서성일 필요가 있을까.
매끼 사 먹으며 사는 세상에 냉정한 상업적 냉기를 먹고 산다.
온정이 가득한 가족애의 부재가 서럽지 않다고 말할 순 없다.
자발적으로 혼자된 삶이 지금은 젊어서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도 편하고 좋기만 할까?
아파 누웠어도 누구 하나 약봉지조차 건넬 사람이 없다는 건 얼마나 서러움과
맞닿은 것인지.
오늘도 내일도 딸은 돈 버는 일에 전념하느라 바쁘다.
부모 마음 한가운데만 타닥타닥 타들어 간다.
세상에 걱정 없는 집 없다더니 딸이 이렇게 걱정거리가 될 줄이야.
하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집이 많아선지 이제는 부모들이 더 달관한 상태로
`그래 그냥 혼자 편하게 살아라.` 그런다는데 나는 아직도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온전한 사람을 온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하는 건지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이런 마인드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지 어쩐지 나도 헷갈린다.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쳐주고 싶어 안달하는 엄마의
생각인 건 분명하다.
올해도 벌써 가을이 스르륵 지나가고 있다.
더 있으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겨울에 부는 북풍한설이 솔로들의 옆구리를 매섭게 할퀴고 지나갈 테다.
그들의 옆구리를 책임질 산타는 없는 건지.
나는 사뭇 걱정으로 또 밤잠을 설칠 것만 같다.
남자들에게 있어 어진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한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소크라테스여! 그럼 여자들은 어떤 남자를 만나야 제대로 된 결혼을 한 건지 다시 한번 설파해 주라.
춥고 긴 겨울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