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어도 든든한 것이 있다

앱 삭제 기능 알림을 받으며

by 김작가

아이폰 유저들은 잘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 유저들은 '쓰지 않는 앱 삭제' 기능에 대해 들어는 봤을 것이다. 내가 쓰는 LG폰에는 '스마트 클리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있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은 앱을 정기적으로 알려주는 기능이다. 종종 알림이 뜨지만 한번도 사용해본 적은 없다. 사용하진 않아도 지우고 싶지 않은 그런 앱들도 있으니까.


기억 중에도 그런 종류의 것들이 있다.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절대 지우고 싶지 않은 그런 기억들. 지식이나 정보로는 분류되지 않을 사소한 기억말이다. 예를 들면, 처음 받았던 상장이나 다 괜찮다며 울던 나를 끌어 안던 엄마의 품, 울던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던 내 손, 처음 먹어 본 햄버거, 나를 처음 울린 영화, 밤새 읽던 해리포터.


호치키스라 불러야 한다

누구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맘 속 어딘가에 그 기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분명 그 기억 중에는 그 당시에는 상처였고 슬픔이었던 것도 있다. 이 몸이 컴퓨터였다면 '프로그램 추가 삭제'를 눌러 관련된 파일을 싹싹 긁어모아 없애버렸겠지만, 다행히 인간에게는 그런 기능이 없어서 좋든 싫든 함께 자라왔다. 그리고 그게 지금 여기로 끌고왔다.

호치키스알은 사놓고 한번도 써본적 없는 물건이다. 애초에 쓸 생각으로 산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샀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중

경: "이 조그만 상자 안에 호치키스 알이 자그만치 5000개나 들어있는 것 알아요? 5000개. 일 년에 호치키스 100번 쓸까말까 한데, 지금 반을 오빠한테 줬으니까, 할머니쯤 되서 호치키스알 살 일이 생기겠네요..."


식: "그럼, 난 호치키스 알 사게해준 사람으로 기억되겠구나?"


오로지 이 대사가 너무 좋아서 호치키스알을 샀었다. 윤경과 광식이 잘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가만히 호키키스알을 보고 있자니 남들이 보면 쓸 때 없고 별거없는 것들이 고마운 일요일 저녁이다.


P.s. 삭제하라는 앱은 마블 퓨쳐파이트와 네이버 뮤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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