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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마치며

대한민국의 동태, 황태, 명태를 응원할 수밖에

by 김작가

지금껏 세 번을 졸업식을 치뤘다. 부모님과 함께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졸업식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한 고등학교 졸업식. 초등학교 때의 졸업식은 아마 어머니에게나 아버지에게 특별했을 거다.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막내 아들이 이렇게 커서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하다니. TV에 나오는 다른 집 자식, 삼둥이 크는 것만 봐도 신기한데, 자기 집 자식이니 어련했을까. 첫 졸업식은 정작 나에겐 큰 감흥은 없었으나 '졸업식'이라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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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라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한 건 아마 두번째 졸업식 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한번의 졸업식을 해봤기에 졸업식에 대한 특별한 기대감은 없었다. 그저 빨리 끝내고 친구들과 피씨방 가서 디아블로나 하고 싶었다. 기특함으로 바라보던 부모님도 이때는 약간의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가서 공부를 잘해야 할텐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자는 두려움이 없다고 들었다. 입시지옥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라 막막함을 없었다.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부모님께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엄마 아빠를 배려한 것도 있었지만 의례적인 행사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부모님이 참석하는 졸업식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몇달 전 졸업준비금을 환불받았다. 졸업앨범과 학사모는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통장에 찍힌 8만원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리고 기말고사의 마지막 시험을 졸업식으로 자체 대체했다.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시험 과목명을 쓰고 담당 교수의 성함을 적고 내 이름을 적었다. 빼곡히 적은 답지를 제출했다. 나의 졸업식은 그걸로 끝났다. 강의실에 우두커니 앉아 떠날 것에 대한 적적함을 즐길 감정은 사치같았다. 그래 깟 '졸업식'이 뭐라고.


법적으로 일찌감치 성인 타이틀을 달았지만 여지껏 온전한 성인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성인치고는 사회에서 과도하게 보호해주는 대상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보호가 성장을 위한 보호인지, 성장을 가로막는 보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3살에 '군대도 안 갔다 온'이라는 울타리를 벗고 이제는 대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었다. 아직도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고 지내기 때문에 부모님의 울타리는 벗어나지 못했지만(어쩌면 안 했지만), 이제야 나는 온전히 사회에 내던져진 것 같다.


겨울 방학이 끝나면 시작될 백수라는 또 다른 삶이 크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으나 사소하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학과 행사나 학교 행사에 대한 알림문자는 졸업생을 취급하지 않을 테니, 그런 지점이 더이상 생이 아님을 상기 시킬 것 같다. 20년 가까이 나를 대변하는 학생이라는 속성이 사라지고 있다. 취업전선에 들어간 심정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떠한 기복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다. 그렇다고 평온이라 표현할 수도 없는 이 감정은 전쟁에 투입되기 전 일개 병사의 심정 같다. 병사로서 전쟁은 사소하진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은 당연한 임무에 불과하다. 아주 조금 두렵다. 그리고 가끔 무섭다.


겨울이라 춥고 바람이 불어서 더 춥다. 몸도 마음도 그렇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기에 묵묵히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봄이 오면 개구리가 울어댄다. 올챙이에서 개구리가 되는 과정은 아주 신비롭다. 동그만 몸에서 꼬리가 사라지고 네 개의 다리가 생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할 만하다. 청춘은 다리가 없는 올챙이인가 추워서 움츠린 개구리인가.


취업에 대한 어려움은 사회적 문제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도 포함한다. 어느 한쪽의 문제로 치부해버려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해결법을 환영하겠지만 당장 덜 아프기 위한 마취주사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취업을 어려운 이유는 아직 올챙이어서 혹은 취업시장이 겨울이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행복의 나라는 아니나 그렇다고 불행의 나라도 아니다.


우리는 명태같은 인생이라 황태가 되든 북어가 되든 뭐라도 된다고 믿고 있다. 물론 사회는 춥고 추위와 더위를 온 몸으로 견뎌낸 이는 황태가 될 것이지만 황태가 되지 못해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졸업과 취업사이에 놓여진 과도기의 백수는 이렇게 심정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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