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자양분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거짓말. 그건 생각보다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거짓말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밖에 안 한 사람은 없을 거다. 처음 거짓말을 할 때는 상당한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이 때의 거짓말 수치는 1 또는 0으로 구분된다. 하면 나쁜 것, 안 하면 나쁘지 않은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그 단계는 넓어진다. 1과 0으로 구분되던 죄질은 1.1, 1.11, 1.111 등 무채썰기 하듯 무한대로 넓어진다. 그래서 0과 가까운 거짓말들도 더 많아진다. 반올림의 법칙이 여기서 작용한다. 5미만은 내리고 5이상은 올린다. 착한 거짓말에 속하는 것들이 더 넓어지는 것 이때다.
생각보다 착한 거짓말들이 점점 들어난다. 그건 아마 나이 먹는 것과 비례할 것이다. 학생의 대표적인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 난 이 두가지 대답이 진짜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며 학년이 오르며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거짓말. 아무도 그게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점점 많은 청춘들의 입을 거치며 공식화된다면 그 거짓말은 사실이 될 수도 있다.
난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론자 혹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안 되는 건 많다. 노력한다고 부자가 될 수 없고, 노력한다고 연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명은 노력하지 않은 자의 입에서 나온다. 힐링과 멘토의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적 지식인들이 강단에 섰다. 콘서트를 열고 책을 냈다. 그 책들은 서점에서 팔려나갔다. 유투브에는 공짜로 있다. 신문기사를 통해 나가기도 한다. 그들의 깨달음을 얻는 건 힘든 시대가 아니다. 예전처럼 서점에서 책을 몰래 훔쳐 읽을 필요가 없다. 시간은 없는 자에겐 항상 없고, 있는 자에겐 항상 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 무엇을 해봤는지. 또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설마 한번 건드려본다고 그 일이 '내가 바로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해줄 그 일이에요'라고 말하기를 기대하지은 않겠지. 그런 일은 드라마나 영화, 또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영웅적으로 기억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쉽게 반했던 사랑이 깨지기 쉽듯이 일의 매력도 비슷하다. 세상에 직업은 너무 다양해서 한번에 찾기란 더더욱 힘들어졌다.
큰 카테고리로 접근하는 거다. 언론에 관심이 있다면 학생기자도 해보고, 홍보서포터즈도 해보고, 영상제작동아리에서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그렇게 점점 좁혀가는 거다. 난 지금의 꿈을 꾸기 위해 7년 동안 다른 꿈을 꾸었지만 꿈을 꾸지 않은 적은 없다. 평생 날 먹여살려줄 것을 찾기 보다는 지금 하고 싶을 것에 몰두하는 게 중요하다. '10년 뒤에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은 질문은 아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이 일은 재미있을까'를 생각하자.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현재 뿐이다. 미래의 영역에 대한 질문에 대해 현재를 사는 사람이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 우주에 이데아 있는지 없는지는 플라톤도 알 수 없고 소피스트도 알 수 없다. 그런 걸 바로 삽질이라고 한다.
누군가 나의 고민을 대신 해결해줄 수 있다면 좋은 걸까. 그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평생 모든 고민을 해결해준다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줄 사람은 없다. 부모님도 언제가는 돌아가시며 배우자의 선택을 언제나 믿을 수도 없지 않은가. 모든 문제는 스스로의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해결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크게 힘들일은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생각을 자주하면 된다. 명품 시계, 명품 가방 등 정신적으로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은 비싸지만, 햇빛, 바람 등의 자연과 생각하기와 글쓰기 등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감사하게도 무료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는 행위는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는 데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증명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