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by 김작가

삼겹살

일요일 낮, 수아가 전화를 했다. "오빠, 삼겹살 먹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 겸 가방도 없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합정동으로 나갔다. 소주도 없이 삼겹살을 먹었다. 대신 소주만큼이나 쓴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 니스 테러 사건이나 터키 쿠데타에 비할 게 못되는 사소한 앞날에 대한 걱정 따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칠레의 광산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무거움일 것이다. 마음의 무게는 잴 수 없으니.

"모르겠어 진짜. 최승자 시인은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온다는데, 서른이 가까워져서 그런 건지, 지금 일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 말에서 삼겹살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느꼈다. 수아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무원을 준비하려 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 헤어졌던 사람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수아는 불안한 거야,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불안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귀를 쫑긋 세우며 듣다가 이제는 내가 한마디 해야 할 차례였다.

"너무 걱정 하지마, 천천히 다시 좋아질 거야. 너무 멀리 보지 말자. 멀리만 보면 바로 눈 앞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잖아."

수아는 그 말을 듣고 유치하지만, 위로는 된다고 했다. 유치한 말도 가끔씩 위로는 된다. 삶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어떤 만남에는 정답이 있다.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낼수록 서로의 정답을 찾기 쉬어진다. 난 수아가 듣고 싶어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위로는 스스로 할 수 없어서 친구의 말을 거쳐야 하며, 위로는 귀로 듣는 것이라 누군가가 말로 해주어야 하는 것임을 배우지 못해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이 만남의 효능이 며칠이나 지속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내일, 다시 그 안에 쌓인 답답한 감정이 출구를 찾지 못해 쌓일 수도 있다. 불안감이 혈관을 막아 동맥경화가 걸리기 직전, 다시 연락이 오겠지. "오빠, 치킨 먹자." 그러면 난 합정동으로 책 한 권 들고, 7612 버스를 타고 자박자박 나갈 것이다. 그때 다시 말해줘야지. 천천히 좋아질 거라고. 너무 멀리 보지 말라고. 잠시 어두워졌지만 수아에게 어서 해가 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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