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by 김작가

흑석동

흑석동을 찾은 건 3년 만이었다. 내게 흑석동은 이름처럼 어두운 시절이었다. 다시 이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검을 흑의 돌 석. 검은색 돌이 많이 발견되어 흑석동이라 불리는 이 동네의 주민들은 흑석동이 아닌 까망돌 마을이라고 부르며 마을을 아꼈다. 쓰지 않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까망돌 벼룩시장이 매달 열렸고, 하나 있는 어린이 도서관의 이름을 까망돌 어린이 도서관이라 지었다. 겨우 자취생이었지만, 흑석동에 살며 스스로를 까망돌 주민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동네 노래자랑에 나갔고, 마을 보안관을 6개월쯤 했다. 모든 활동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래서 다시는 찾고 싶지 않았다. 옆에 항상 그 아이가 있어서. 3년 동안 흑석동을 찾지 않은 건, 거리 하나에도 하연이의 이름표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흑석시장에 가면 같이 먹던 닭강정이 생각났고, 중앙대 병원 앞에서는 까치발을 들고 보라색 백팩을 꽉 쥔 채 버스를 기다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중앙대 정문 앞 이삭토스트 앞을 지날 때는 새우토스트보다 햄토스트가 더 맛있다고 말했던 모습이 스쳐갔다. '너의 기억이 거리에 묻어있다'던 성시경의 발라드 가사가 유치하다고 느꼈지만, 유치함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사실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안녕하세요. “

"아니 석준 씨 이게 얼마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우린 거의 그 카페였다. 데이트와 공부를 같이 한다는 핑계로 외국어로 된 노래만 나오는 그 카페가 생각이 났다.

"졸업도 하고 일하면서 지냈죠. 요즘 카페 창업해도 오래가기 힘들다던데 벌써 5년째면, 자리 잡았네요."

"저야 뭐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예요. 석준 씨는 취직했구나. 잘됐다 정말. "

"혹시 하연이는 요즘 안 와요?"

흑석동에 산 지 2년쯤 됐을 때, 중앙대 병원 앞에 카페가 하나 생겼다. 탐앤탐스, 이디야의 프랜차이즈 개성에 질렸던 우리는 조용하고 새로운 카페를 항상 기다렸다. 후미진 골목 3층에 네온사인 간판도 없는 카페가 생겼다. '생각이 나서'라는 카페였다. “이름이 ‘생각이 나서’래, 이름 너무 예쁘다.” 그때 걔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었나, 귀엽다고 볼을 꼬집었었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좋아했다.

"아... 하연 씨는 이사 간 거 같던데요? 아마 작년 이맘때 작별 인사하러 왔었어요. 그때가 말복이었는데, 저한테 삼계탕은 먹었냐고 묻더라고요. 자기는 삼계탕 대신에 흑석시장에서 닭강정 사 먹었다고 했었는데..."

말 줄임표. 하연이는 안 오냐는 물음에 1초의 정적이 있었다. 그때 사장님은 '아 둘이 역시 헤어졌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나와 자리에 앉아서 얘기하자고 하더니 알바생에게 따뜻한 녹차라떼 두 개를 진하게 달라고 했다. 녹차라떼는 우리가 항상 먹던 음료였다.

"사실 헤어졌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하연씨한테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둘이 너무 좋아했잖아요. 마을 행사에 다 참여하는 예쁜 커플이었는데... 그때 하연씨가 울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내가 아무 얘기만 해도 눈물 터트릴 것 같아서. 근데 대충은 짐작했어요. 제가 왜 말복인데 좀 든든하게 먹지 닭강정 먹었냐고 하니까 그러더라구요."

"뭐라고 했는데요?"

"닭강정 맛을 까먹고 싶지 않은데, 까먹을까봐 먹은 거라고. 까먹으면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나서 흑석동에 올 일이 없을까봐 먹었다고. 오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고,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어디 간다고 했어요. 해외였는데, 터키였나 캄보디아였나."

키가 큰 알바생은 녹차라떼 두 개를 들고 카운터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카페 문을 열면서 시끌벅적하게 들어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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