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웅이
어떤 술자리는 이와 이와 부딪혀 파열음만 내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 술자리는 꽤 어른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민웅아 너 되게 어른스럽다." 나는 친구가 말하는 방식이 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민웅이는 7년 전 영상 연출 수업을 같이 들은 동갑내기 친구다. 민웅이는 내 말을 인정하기 전에 질문을 던졌다. "어른스러운 게 뭐라고 생각해?" 그때 난 어른스럽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 말의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글쎄, 관대함이나 포용력이 있다는 거 아닐까. 그게 뭔지는 몰라도 사실 '-스럽다'라는 말은 실제 대상에게는 쓸 수 없는 말이라고 들었어. 그러니까 어른스럽다는 말은 비(非)어른에게만 쓸 수 있는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 나도."
어떤 것이 어른스러운 것일까, 어른의 속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유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철들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연남슈퍼에서 황태구이를 먹었다. 민웅이가 그날 어른스러워 보였던 이유는 내게 황태를 부드득부드득 뜯어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란 언제나 힘이 들었고, 친구들은 귀를 열기보다는 누구의 이가 더 많은지 대결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서로의 주장만 재확인이 과정을 겪을 뿐이었다. 민웅이는 내가 말하고 있을 땐 끼어드는 법이 없었다. 진지하게 듣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정답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정사각형을 얘기하면 최대한 그것과 비슷한 모양의 경험담을 말하며 자신의 실수까지 말했다. 그런 방식이 좋았다.
사실 나도 민웅이와 비슷한 사람이긴 하다. 고민을 잘 들어준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대화를 할 때 논술처럼 '주장+근거'이나 '사례+핵심 주장'을 말하지도 않았다. 수필처럼 주장 없이 나의 경험과 실패를 고백했다. 그렇다. 난 어제 어른스러운 친구를 만나 기분이 좋았고, 나도 못지않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자존감이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