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계절이 간다
조용한 계절이다. 평생을 함께할 짝을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이 친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지만, 그와 친하지 않은 지인들에게는 애매한 사이의 종결을 의미했다.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남은 사람 편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새삼 예식장이 작아 보였다. 언제나 모임의 중심에 있던 친구조차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맘이 쓰렸는지 모른다. 돈만 보내는 사람, 돈도 보내지 않는 사람. 아니, 어쩌면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사람, 직접 청첩장을 받는 사람이 먼저 구분된 순서였을지 모른다. 배터리가 한 칸 남으면 불안하듯 우리에게는 기회가 별로 남지 않을수록 불안감이 증폭된다. 나이도 마찬가지, 왜 불안하냐고 물으면 멍청이다.
조용한 계절이 지나간다. 면접을 준비하던 친구는 합격자 발표 날짜가 지났지만, 연락을 못 받았다. 그 친구가 집안에서 짊어진 무게를 잘 알기에 결과를 물어보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나와는 달리 해야 하는 대로 살았던 친구는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이 조용한 계절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나온 C는 서류 전형에서 다 떨어졌다며 울었다. 왜 사는 건 이렇게 힘드냐며 소주를 마셨다. 친구S는 대기업 인턴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해 다른 곳에 도전하려 준비 중이다. 워낙 씩씩한 친구지만, 자주 술을 마시는 걸 보니 속이 썩고 있는 게 분명하다. 친구J는 미래를 위해 대기업을 나와 고시를 준비 중이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앞에 앉아 '고시...'라고 힘들게 입을 떼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잔인하게도 시련의 크기는 달랐지만, 느끼는 무게에는 차이가 없다.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술잔을 건네는 것이,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더 쉬웠다. 오늘은 유난히 조용한 하루였다. 캠퍼스의 활기참과 망원시장의 시끌벅적함은 나와 우리의 스무 살을 떠올리게 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부딪치던 높은 벽을 이제는 각자가 오로지 각자의 몸으로 싸워나가고 있다. 나 역시 이 계절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스물아홉 살을 온몸으로 부딪쳐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