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에서 성수동까지

by 김작가

부암동에서 성수동까지

1.'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불을 걷어찼다. 날씨도 좋은데 거국적으로 산책을 해보자. 일단 후보는 파주 지혜의 숲, 부암동, 문래동, 성수동, 성북동, 해방촌. 지혜의 숲에 가고 싶지만 너무 멀고, 문래동은 지난번에 대충 갔다 왔으니 성수동과 해방촌으로 픽! 하지만 난 웬일인지 부암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7018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예전 직장의 출퇴근과 같아서 익숙했다. 아기자기하며 독특한 카페와 맛집이 보여서 눈여겨봤었던 길. 홍차전문점 앨리스의 티팟, 산토리니가 생각나는 파란대문, 장인의 맛이 날 것 같은 오로지 김치찌개 등.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어제 다운로드한 노래를 들으며 부암동 뒷골목을 산책했다. 날씨도 덥고 한 시간이 지나니 더 덥고. 뒷골목은 오르막길이라 고산병에 걸릴 것 같아서 한 바퀴만 돌고 내려왔다. 가을이면 단풍이 보여서 더 예뻐 보일 동네라 생각이 들었다. 왠지 누군가의 손을 잡고만 싶은 날씨라, 왼손과 오른손을 꽉 잡았다. 할 말이 없으니, 아멘. 부암동에 이어 성수동으로 향했다. 성수동에는 처음 가봤다. 이곳이 '핫'하다기에 얼마나 핫한지 화상 입을 각오를 하고 갔는데, 연남동- 합정동에 길들여진 나에게는 미지근했다. 다만 각종 공장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카페의 조화가 오묘했다. 특히 대림창고는 지금껏 봤던 카페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실험적인 공간이었다. 앤트러사이트 보다 더.


2. 페이스북을 보다가 오늘 모교를 찾아간다는 글을 봤다. '어? 오늘 모교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둘이나 있네. 무슨 날인가?'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다.


3. 지하철을 탈 때, 특히 줄 마지막에 서서 탈 때면 괜히 불안해진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라는 안내가 계속 나오는데 아직 내가 있는 곳이 스크린도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가고 있으면 무섭다. 그 사이에 갇히는 건 아닐까, 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여유롭게 들어가는 걸까 궁금해서 지하철 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그 줄에 한 명이라도 스마트폰을 보며 입장하면 그 뒤로는 다 천천히 들어가게 되더라. 제발, 그때 폰 안 봐도 무슨 일 안 생기잖아요.


4. 오늘따라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이 나서 좋았다. 주로 걸을 때 글감이 떠오르곤 하는데, 요즘엔 걸을 일이 없었다. 퇴근하면 누워있고 싶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6시간 정도 걸었더니 일주일치 분량이 나왔다. 무엇이든 쓰고 싶지만, 쓸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걸으면 생각이 나다니,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있다는 건 다행스럽다. 발자국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시스템인가. 3000보 걸으면 '글감' 하나 ‘뿅’하고 나타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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