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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28. 2015

마크 슐츠의 가면

영화 <폭스 캐쳐> 감상평

사람들은 여러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가면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족들 앞에서의 모습, 친구들과 함께할 때의 모습 그리고 직장 내에서의 모습. 그 중 무엇이 진짜 얼굴일까. 무엇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 진짜 가짜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원래 그런 애야"라는 말로 쉽게 사람의 기질을 단정지을 만큼 우리는 타인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스스로도 죽을 때까지 본인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와 같은 답을 찾기 힘든 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폭스캐쳐>의 존 듀폰과 마크 슐츠가 소유하고 싶은 가면은 선명하다. 형을 뛰어넘는 레슬링 선수 그리고 존경받는 레슬링인(人)이다. 욕망은 뚜렷했으나 욕망의 종착점이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진정 자신이 원했던 욕망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둘을 보면 항상 불안해보이며 성취를 갈망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남탓을 짙게 한다.


친구가 없었다는 유년시절의 공통점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그들의 애정욕구는 남들이 가진 그것보다는 이상인듯하다. 그들은 인정받고 싶어서 사람을 버리고 돈을 이용하고 상처를 준다. 그들이 가지고 싶었던 가면은 무엇일까.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는 삶만이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맞는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만하다. 마크 슐츠가 그래던 것처럼. 우리는 거울을 보고 계속 봐야 한다.

 

형제 없이 자란 사람이라도 강하게 질투했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 대한 질투의 속성엔 가속성이 있어서 질투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부터 미움의 영역은 한없이 확장된다. 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도 무서운 감정이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확장시키지만 본인을 갉아먹는 동시에 무방비의 적을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다는 점에서 정말 위험한 감정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질투를 피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아는 게 중요하다.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통사고처럼 나만 운전 잘하는 게 중요하진 않다. 누군가의 부주의가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우리는 평생을 질투의 씨앗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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