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감에 대하여
강남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강남에 갔다. 강남의 사람들은 꽤나 도도해 보였다. 약속 장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의 거리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화난 듯 냉정한 얼굴.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여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 30cm. 그 거리는 평소에 그들이 두지 않을 길고도 긴 거리일 것 같다.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놓고 대치하는 남녀를 보면 우습다. '금방 또 화해할 거면서...'
이번에는 세 사람이 서있다. 두 명이 한 사람을 빤히 보는 형국이다. 수세에 몰린 한 명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은 끊임없이 말하고 나머지 한 명은 눈도 깜빡하지 않으며 눈빛으로 말한다. 아마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말하고 있겠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보면 친구인 척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고 싶다. 팁이 있다. 강남 종로 홍대에서 반대편에서 다가와 말을 시키면 무조건이다. 누가 내게 말을 시키겠니. 대꾸도 하지 말고 그냥 무시하며 지나가면 안 따라온다.
오랜만에 찾아간 강남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이 분주한 사람들로 넘친다. 이렇게 화려한 사람들 속에 내가 있어도 되는지 묻게 만든다. 그래서 강남이 내키지 않는 걸까. 그래서 교보문고로 도망치게 되는 걸까. 파고다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나온 열심히 사는 사람들, 외모가 우월한 사람들, 옷이 멋있는 사람들, 외제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 사랑에 빠진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 등. "저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여집합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거리조차 잴 수 없는 다른 세계다. 오늘따라 사람 사이의 거리조차 그립다. 강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잘 자고 있지?"
네 물론이죠. 잘 자고, 잘 살고 있어요. 그날따라 힘들게 하는 단어가 있고 오늘은 그 단어였나 보다. 그동안 대충 잤었는데, 오늘은 최선을 다해 잠들어 보려 한다. 이불을 세로로 펴고 발만 쏙 내놓고 베개도 지퍼가 아래로 가게 놓고 정중앙에 머리를 놓고 자야지. 그럼 잘 자는 거겠지.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고민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걸 해결하고 자야 잘 자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놓아버리는 게 잘 자는 걸까. 일단은 이불속으로 들어가자. 선풍기 타이머를 맞추자. 그리고 조명등 ON. 라디오 ON. 엄마 나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