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고 꿈은 꾸지 않았다
9월 첫 시사회는 <우리의 20세기>부터 시작될 것 같다. 뭔 영화인지 몰랐는지 예고편을 보고 어떤 영화인지 알 것 같아서 기대하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영화다. 이야기가 아닌 느낌으로 하는 이야기.
#나의 책
1. 책 판매량이 한동안 올라가지 않아서, 이제는 팔릴 만큼 팔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낸 이후에 바로 다음 책을 쓸 예정이었는데, 문제는 내게 할말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껏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쓸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차면 그것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전부 사라지니 밀어낼 것이 없었다. 사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편을 택했다. 할 말이 다시 생길 때까지 쓰지 말자. 전업작가도 아닌 게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전업작가였다면 쥐어짜서라도 글을 만들어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불행한 것일까 다행한 것일까.
#볼 영화
2. 영화에 대한 애정도 식었다. 하루에 여섯 편씩 봐도 질리지 않아서 '후훗, 나는 정말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이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질렸다. 질려버린 시점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질렸다는 표현은 맞는 것 같다. 더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이유는 나도 모른다. <혹성탈출>에는 언어능력이 퇴화되는 인간이 나오는데 그들을 인간성이 상실된 것처럼 묘사한다. 영화가 글이 재미없어지며 내가 소멸하는 것 같았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도 느끼는 바가 없었고, 메세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흥미를 잃은 뒤로, 영화도 안 보기 시작했다. 영화 기자가 아닌 게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영화 기자였다면 싫어도 영화를 봐야 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불행한 것일까 다행한 것일까.
#보통 날
3. 그래서 보통의 나날을 어떻게 보냈냐면, 카페에 오래 있었고 카페 영업이 끝나면 나가서 걸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사실 이것들도 재밌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게 없었다. 모든 것들을 다 해보며 모든 것들이 재미없었는데 그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권태를 느끼는 건 영화나 글이 아니라 인생이었으니까. 난 고작 인생에 대한 권태를 느낄 뿐이다. 다시 영화를 느낄 수 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설레다
4. 다행히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다. 회복된 지점은 정확히 찾아낼 수 없다. 하루만에 좋아진 것이 아니라 왠지 어제보다 오늘이 나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친구들과 관계를 멀리하는 것? 권태로운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 지겨운 간섭에서 해방되는 것? 셋 중에 하나쯤은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셋이 가장 중요했다. 내게 필요한 건 여유나 자유가 아니라 긴장과 충돌이었다. 낯선 사람이 주는 긴장감, 익숙한 사람과의 충돌, 그렇게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며 물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 과정을 '설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헤어졌던 사람도, 멀어진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