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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아버지는 영화를 좋아할 시간이 없었다

2017년 8월 6일

by 김작가

나의 아버지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퇴근 후 3시간쯤 보장되는 저녁과 주말이 없는 주말은 영화가 들어가기엔 힘들었다. 쉴 땐 말그대로 쉬어야 했던 것이다. 쉬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와 나는 달랐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기차를 타고 20분쯤 가면 나오는 대구가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었다. 일요일이면 기꺼이 그랬다. 내게 휴식은 공부가 아닌 다른 걸 하는 거였다. 이 지루함을 권태스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게 필요했고, 그게 영화였다. 내게는 그럴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가 유난스럽다고 했다.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나" "재밌어요. 다음에 같이 보러 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재미없다."

아버지는 영화가 재미없었던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TV에서 하던 코미디 영화를 보시고 실컷 웃으셨다. 그 영화는 성룡영화이거나 홍콩영화였다. 우린 같이 누워서 더빙이 된 성룡 영화를 보며 웃었지만, 아버지는 더 좋아할 여유가 없었던 거다. 내가 스무살이 되고 대학교에 들어가 신촌으로 홍대로 영화를 보러 다닐 나이에 아버지에게는 가족이 생겼고, 일을 배웠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가족>이라는 영화를 봤다. 수애와 주현이 나왔던 저예산 가족 영화다. 아버지와 내가 극장에서 함께 봤던 유일한 영화. 아버지는 영화가 지겨웠다고 했다. 다음에 더 재밌는 걸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내려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아버지는 돈이 아깝다고 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모두 덕분이라 생각이 들어 조금 슬프고 많이 고마웠다. 덕분에 조금은 덜 지루해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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