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배우 송원근, 정원영 인터뷰
“우리 모두는 앨빈으로 태어나 토마스가 된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프로듀서이자 연출가인 신춘수의 말이다. 때 묻지 않은 아이로 태어나 점차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이라는 뜻이다. 친구가 가장 소중했던 아이에서 일과 나 자신이 더 중요한 어른으로 커버린 관객들은 뮤지컬 속 두 친구의 인생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큰 도시로 떠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토마스와 시골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순수한 친구 앨빈은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토마스가 대도시로 떠나자 점차 앨빈과는 멀어진다. 뮤지컬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앨빈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를 위해 송덕문(고인을 기리는 추도 연설)을 쓰는 토마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8년 전 초연을 하고 어느덧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토마스 역에 송원근, 앨빈 역에 정원영을 새롭게 캐스팅하며 다시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원영과 송원근 두 배우를 만났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두 분은 함께하는 첫 작품이죠?
송원근 네. 같은 작품을 하는 것도, 실제로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원영 씨가 먼저 편하게 다가와 줘서 빨리 친해졌죠. 사실 만나기 전부터 정원영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었어요. 쉴 틈 없이 웃기며 활기차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요. 둘 다 이 작품이 처음이라 일주일 중 6일을 연습실에 가는데, 둘이 특히 매일 보니까 “그냥 우리끼리 고정 페어로 공연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농담까지 할 정도에요.
정원영 저는 예전에 원근 씨를 뮤지컬 <타이타닉>에서 봤어요. 큰 율동 없이 살짝 움직이는데도 각이 살아있더라고요. 역시 아이돌 출신이라 뭔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 외모에 노래와 연기, 춤까지 잘하는구나 생각했죠(웃음).
송원근 지금도 체력만 되면 <인기가요>에서 3등 정도는 자신 있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송원근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했던 배우가 저에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랑 너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나중에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더 관심이 생겼죠.
정원영 저는 가끔 팬들과 모임을 갖는데, 저랑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항상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나왔어요. 궁금했어요. 나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길래 이 작품을 하길 원하는 걸까 싶었죠. 팬들이 기다리는 작품이니 이번 기회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건 운명이다’ 싶은 마음으로 결정했죠.
두 사람만의 토마스와 앨빈을 연기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송원근 지금은 대본에 충실하자는 마음뿐이에요. 토마스 역에 같이 캐스팅된 강필석 씨가 저한테 이 작품을 처음 했을 때 너무 어려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가니 조금씩 확실히 알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고요. 제가 아직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강필석 배우가 느꼈던 그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관객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송원근만의 토마스를 만들기보다는 대본 속 토마스에 충실하고 싶어요.
정원영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정원영의 앨빈은 이런 점이 달랐구나’라는 감상보다는 앨빈 그 자체로 느낀다면 좋겠어요. 2년만에 뮤지컬을 보러 와준 관객들에게 ‘아 맞아, 내가 알고 있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이거였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어요. 다른 연기를 보여주려다 보면 관객들이 ‘틀렸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거든요. 작품에 잘 스며들어서 관객들의 추억을 되새겨주는 앨빈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대본을 읽었을 때 작품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정원영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 공연을 봤을 때는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요. 토마스가 송덕문을 쓰면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환상과 현실이 전환되는 장면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어요. 대본을 받고 처음 읽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그런데 배우와 스태프들이 만나서 대본을 읽으며 움직이면서 연습을 하는데 그때서야 ‘아, 이 말 한마디에는 이런 의미를 두어야 하는구나’ 느낌이 왔어요. 이 때 제목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죠.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데 왜 ‘our life’가 아니라 ‘my life’일까 싶었거든요. 연습을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앨빈의 삶에서 토마스가 전부였기 때문에 결국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곧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송원근 저는 대본을 보고 토마스가 정말 평범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친구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토마스가 작가의 꿈을 꾸게 되는 계기도 앨빈이 아버지의 책방에 데려가서 <톰 소여의 모험>을 선물로 주기 때문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작가의 꿈을 자연스레 키우게 된 것도 아니고요. 앨빈이 책 이야기하면 토마스는 장난감 얘기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평범한 아이이기 때문에 더 공감할 수 있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한때 친했던 친구와 소홀해지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잖아요. 토마스에게 앨빈은 그런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앨빈에게 토마스가 너무 큰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원영 큰 존재 이상으로 전부였을 것 같아요. 원래는 부모님이 앨빈의 전부였는데, 여섯 살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만 남잖아요. 그런 아버지도 책방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앨빈은 늘 혼자거든요. 그때 학교 핼러윈 파티에서 토마스를 알게 된 거죠.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아껴주었기 때문에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토마스를 두고 앨빈은 자살을 선택하게 되잖아요. 그 이유가 정확히 나오지 않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해석했나요?
정원영 우선 작품 안에서는 명확히 자살이라고는 간주하지 않아요. 다만 그것이 자살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앨빈이 토마스에게 준 <톰 소여의 모험>의 서문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세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누군가가 쓴 이야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요.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혼자 살게 되는 앨빈에게는 힘든 삶만 남았을 수도 있잖아요. 고달픈 삶이 되기 전에 좋은 기억만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토마스의 삶에도 좋은 이야기로만 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송원근 저는 앨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고향으로 달려가서 펑펑 울 정도로 순수한 토마스가 이미 아니라고 생각해요. 먼저 죽는 친구에게 송덕문을 써주기로 어렸을 때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가서 글을 쓰죠. 왜 자살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써 내려가는 거죠. 송덕문을 쓰면서 앨빈과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다 보니 친구는 나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 거였고 내가 앨빈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깨달아가요. 토마스는 그때서야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봐요.
정원영 앨빈이 자살한 이유를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면 이런 마음일 것 같아요. 우리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것과 친구로서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송덕문에 쓰기로 약속했거든요. 어른이 되고 토마스는 자신과 멀어졌지만, 송덕문을 쓰며 다시 한번 인생을 되돌아보길 바라는 거죠. 나만의 것이라 생각한 인생에는 앨빈과의 추억이 있을 테니까요.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글을 써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앨빈에게는 있었을 것 같아요.
특별히 잘하고 싶은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요?
송원근 토마스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큰 도시로 올라가게 돼요. 그때 다리에서 앨빈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신(scene)은 연습하면서도 찡한 느낌이 들어요. 둘이 첫 번째 이별을 하는 거니까요. 극 후반부에 관객들이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더 슬프게 느껴질 것 같아서 잘하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둘이 서재에서 같이 율동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원영 배우가 매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란한 동작을 선보이거든요. 그 부분도 잘 준비하면 좋겠는데, 그날 기분 상태에 따라 원영 씨의 동작이 달라질 것 같아서 준비할 수가 없네요(웃음).
정원영 하하. 무릎보호대가 필요한 과격한 율동도 있었죠. 사실 그때는 제가 앨빈을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런 현란한 동작들도 하곤 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지금은 ‘앨빈’스러운 동작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직까지 앨빈이라는 인물이 가진 특이함이란 뭘까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공연 전까지 어울리는 동작을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는 장면으로 만들고 싶어요.
연기하면서 어떤 장면에서 크게 공감이 되었나요?
송원근 앨빈이 토마스에게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수천 개야. 너의 이야기를 해”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가슴에 정말 와닿아요. 저는 배우가 되기 전에 아이돌로 활동할 때는 본명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이불, 런 같은 예명으로 살았거든요. 가수가 됐을 땐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마네킹처럼 살아야 했어요. 그래서 너의 이야기를 하라는 앨빈의 말이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정원영 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앨빈처럼 순수한 친구가 있었어요. 따뜻한 말 한 마디와 관심이 필요한 친구인데,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어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지금 제 주변에 있는 토마스 같은 친구들과 어린 시절의 앨빈 같은 친구들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송원근 연습하는 과정에서 제가 토마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옛날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어요.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서 같이 뛰어놀고 방학하면 친구네 집에서 살다시피 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포장마차에서 어묵 먹으면서 서로 고민 털어놓고요. 스무 살 때까지는 그랬어요. 이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연락도 자주 하기 어렵고 점점 멀어진 거죠.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주소록에서 이름을 검색했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저장을 안 했나 싶어서 다시 찾아보니까 별명으로 저장을 했더라고요. 전 그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거죠. 그 순간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송원근 네. 시상식에서 토마스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앨빈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잖아요. 그 장면을 연습하면서도 옛날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도 토마스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사실 가슴 속에 깊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공개석상에서 순간적으로 떠올리기가 어렵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너무 소중한 친구였지만 소중했다는 사실도 잊히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친구가 되었다는 게 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정원영 저는 토마스와 앨빈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관계가 시소와 비슷하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래에 있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위에 있는 거죠. 항상 사랑받는 사람은 아래의 친구가 나를 높여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래로 떨어뜨리는 사람도 밑에 있는 그 친구거든요. 앨빈을 떠나보내고 시소 아래로 떨어진 토마스는 공허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넘버가 가장 슬퍼요. ‘글은 안 써지고, 앨빈은 없고 나는 왜 혼자 여기 있는 걸까’하는 장면이요.
두 분에게 이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요.
송원근 제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게 만든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와 연락을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고요.
정원영 삶에 나침반 같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아직 인생의 절반까지도 오지 못한 30대 중반의 나이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인생을 마무리할 땐 무엇을 남기게 될까 같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뮤지컬이 되지 않을까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생 중간 점검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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