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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03. 2019

소년은 자란다

연극 <에쿠우스> 배우 안승균 인터뷰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한 배우 안승균은 조용했다. 아침을 먹었냐는 질문에 “아침을 잘 안 먹어서요”라고 나지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배우의 얼굴은 마치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소년의 얼굴처럼 할 말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안승균은 그 동안 뮤지컬, 연극, 드라마에서 유독 청소년 역을 많이 연기했다. 연극 <비행소년 KW4839>에서는 갈 곳이 없어 공항에 모인 청소년, 뮤지컬 <마이맘>에서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겨진 아들, 연극 <렛미인>에서는 뱀파이어를 사랑한 외로운 소년. 맡은 역할은 달랐지만 소년들은 외롭고 쓸쓸했다. 그는 연극 <에쿠우스>의 알런 스트렁 역으로 또 한 번 소년을 연기한다. 말의 눈을 찌르고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 17세의 비밀스러운 소년이다. 


3 전에도 <에쿠우스오디션을 봤다고 들었어요.

네, 그 오디션에서는 결국 떨어졌죠.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고 있는 이한승 연출가님에게 오디션을 봤었는데, 저한테 “알런을 연기하기엔 승균이가 아직 어리다. 조금 더 성숙해지고 다시 보자”고 말씀하셨어요. 합격은 못 했지만 그 말이 힘이 되었어요. 다른 작품에 지원했을 때는 서류단계에서 계속 떨어졌는데, 유일하게 연기 실기까지 본 작품이 <에쿠우스>였거든요. 연출가님을 3년 만에 뵙고 생각보다 빨리 다시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대본을 통해 느낀 알런은 어떤 인물 같았나요.

단순하지 않은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친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순수한 것 같지도 않았어요. 저는 알런의 그런 성향 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아이 같다고 느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느껴졌나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특히 정신과 의사인 다이사트와 알런의 대화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말하기 싫은 트라우마에 대해 계속 물으면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이로서는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요. 작품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덕분에 저도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타인의 기준에서 비정상이라고 하면 비정상이 되는 건가, 그럼 어떤 어른이 정상이고, 또 좋은 어른은 무엇일까, 하는.


<에쿠우스등장인물 중에는 다이사트가 좋은 어른에 가깝지 않을까요?

다이사트의 모든 행동이 옳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좋은 어른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에요. 다이사트는 알런을 통해서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보거든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어른은 아닐 수 있으나 좋은 어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인 것 같아요.


특별히 잘하고 싶은 대사나 장면이 있나요.

전부 다요. 다 잘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다 어려워서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되는 장면이 있어요. 1막 엔딩에서 알런이 말을 타고 환희와 희열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부담되면서도 기대되는 장면이에요.


알런 역으로  번째 무대에 오르는 배우 전박찬과 함께 캐스팅되었는데부담감은 없나요.

전박찬 선배와 더블캐스팅이라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부담감은 없는 것 같아요. 영광스러울 뿐이죠. 선배와는 아직 연습을 같이해본 적이 없어요. 연기를 보면 위축될 수도 있어서 차라리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전박찬 선배뿐만 아니라 손병호 선배, 장두이 선배와 한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러워요. 제가 언제 또 같이 무대에 서서 호흡을 할 수 있겠어요.



알런을 연기할  어떤 점이 어렵게 느껴지나요?

저는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볼 때가 많아요. 알런을 연기하는 요즘은 ‘나도 알런처럼 무언가에 깊게 빠져본 적이 있었나’ ‘내게도 그런 순수함이 남아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져봐요. 아직까지는 무언가에 깊숙이 빠지는 알런의 순수한 감정을 연기하는 게 어려워요. 맹목적이고 강렬한 순수함이라는 게 뭘까, 빠진다는 게 뭘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계속 묻게 되더라고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뭐였나요?

제가 알런만큼의 순수함을 가지고 좋아했던 건 춤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부터 스트리트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고, 춤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처음에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춤을 췄고,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친구들과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이 학교 축제에서 춤을 추기로 했는데, 제가 진 거죠. 비의 ‘I’m coming’과 팝핀을 무대에서 보여줬는데, 신기하게 하나도 안 떨렸고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그 이후로 댄스에 반해버린 거죠.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던 춤을 단번에 포기하게 만든 게 연극이었어요. 연극을 처음 보고 이유 없이 ‘아, 이거다’ 싶었어요.


어떤 연극이었어요?

윤영선 작가가 쓴 <임차인>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연극영화과 선배들이 꾸민 학교 공연이었어요. 그렇게 슬픈 작품도 아니었는데 커튼콜 때 엄청 울었어요. 배우들이 많은 대사를 외우고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당장 교무실로 가서 연극영화과로 전과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과를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전과시스템이 없었거든요. 선생님이 내신성적 1등급 유지하면 전과시켜주겠다고 약속해서 결국엔 성공했죠.


막상 연기를 해보니 힘든  없었나요?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려는데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울렁증이 심했어요. 대사는 다 외웠는데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땀이 비 오듯 나고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들어서 울기도 했어요. “저는 이제 춤 안 춥니다. 연기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즐기지 못하고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고, 결국 입시에도 떨어졌어요.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됐어요?

재수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께서 연기하는 것을 반대해서 손을 벌리기 힘들었거든요. 새벽에 PC방에서 일하고, 마트에서 고기도 팔았어요. 다섯 가지 일을 4개월 동안 했는데, 돈을 번다는 게 진짜 어렵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죠. 동전 던지는 손님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얼굴에 침을 뱉는 손님도 있었어요. 고생해서 천만 원 가까운 돈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했더니 그때는 겁이 하나도 안 났어요.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고쳐지고, 능글맞게 말하는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다시 연기했을 때는 겁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실패했던 경험이 연기에는  도움이  거네요.

네. 연극 <비행소년> 면접 볼 때도 재수 시절 경험이 가장 흥미로웠대요. 오디션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뭐냐고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재수 여행이라고 썼어요. 여행이라는 건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겐 재수 생활이 그랬거든요. 오디션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스물두 살짜리 같지가 않았대요(웃음).


데뷔하기 전까지 치열하게 살아온  같아요.

네. 좀 그렇죠. 그런데 열심히 사는 게 괴롭지 않고 재미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발판 삼아서 즐기는 편이거든요. 어렸을 때도 그랬어요. 놀고 싶은데 해야 할 게 있으면, 우선할 것부터 끝내고 노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연기에는 끝이라는 게 없잖아요. 가끔은 너무 잘하려다 보니 건강을 잃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걱정마저 안 들 정도로 지금은 연기가 좋아요. 지금 맡은 배역을 언제 다시 연기하게 될지 모르니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동안 10 소년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외모나 나이 때문에 배역이 한정되곤 하는데 아쉬움은 없었어요?

있었죠. 데뷔 이후로 청소년 역할을 계속 해왔고, 작년에는 드라마에서도 교복 밖에 안 입다가 올해 <나의 아저씨>로 성인 연기를 시작했으니까요. 처음에는 고정된 이미지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은 즐기려고 해요. 나중에는 어린 역할을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요. 이왕 소년 역 많이 하는 거 소년 연기는 안승균으로 정점을 찍자는 생각이에요. 조바심 안 가지려고요. 기회라는 건 제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면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남들이 안 해본 다양한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사이코패스 역할도 욕심나고, 몸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아서 모션캡처로 외계인이나 드래곤 연기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움직임에는 전부터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서 열린 모션캡처 관련 워크샵에도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봤던 어떤 배우는 순식간에 10명의 움직임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그동안 움직임이 많은 작품에 출연해왔네요.

네. <죽고 싶지 않아>도 댄스씨어터고 <렛미인>도 중간중간에 안무가 많았고, 데뷔도 뮤지컬이었어요. 제가 춤을 췄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어요. 연기는 이렇게 경험했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접목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영화를 좀 더 경험해보고 싶어요. 영화 <걷기왕>이 스크린 데뷔작인데 가족 같은 분위기가 연극과 비슷해서 좋았어요. 최종까지 올라갔다가 다 떨어졌는데, 감독님들이 줬던 조언들이 정말 좋았어요. 영화에 도전하면서 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또 제가 배움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외국어도 배우고 싶고, 여행도 많이 가보고 싶어요. 배우는 무엇이든 배워놓으면 쓸 수 있으니까요.


출처: http://theartpark.co.kr/201810_%EB%B0%B0%EC%9A%B0%EC%95%88%EC%8A%B9%EA%B7%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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