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두 리스트(5)

by 김작가

-기획기사가 너무 없어. 인터뷰는 홍보성 인터뷰에, 취재활동이라고는 시사회나 제작발표회 가는 것 뿐이고, 기자라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계속 실시간 검색 뉴스 만들어내는 것 뿐이니까.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데, 이게 기자인지 모니터링요원인지 아니면 홍보대행사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관뒀지.
-그럼 이제 뭐하게?
-뭐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왔지. 미래에 뭘 할지 몰라도 현재에 하는 일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하는 거지. 이런 게 기자라면 차라리 기자를 안 하지.
-그렇구나
-사실 나도 이런 빡빡한 내가 힘들어. 그냥 살면 되는데.
-아니야, 그게 좋은 거지. 잘 사는 거지.

이게 잘 사는 걸까. 석현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남의 속을 알 수가 없다. ‘남’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서운할까. 그래도 아무리 친해도 남은 남이니까.

-형, 홍대 자주 오잖아. -응
-전 여친이랑 여기도 와본 적 있어? -없어
-왜? -여긴 며칠 전에 알았어. 그리고 전 여친이랑은 합정동까지는 안 왔어. 홍대 부근에서만 놀았지. 그땐 맛집 찾고 이런 거 잘 안 했던 거 같애. 생각해보면 그런 거 안 해도 같이 있는 게 좋았으니까 그랬겠지.

전 여친과의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면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애처롭다. 설렘도 슬픔도 무뎌졌다. 날씨는 좋은데 손 맞잡을 사람이 없다는 게 서글프다. 취업이 먼저냐 연애가 먼저냐 따위를 고민하지 않았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연애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것도 아니다. 여전히 성실하게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이 젊은 나이에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면 실성해버린 것 아닐까.
-형 근데 왜 연애 안 해?
하지만 이런 질문은 지겹다. 저런 형태의 질문은 상당히 불편하다. 왜냐고? 왜 안 하냐는 말 기저에는 당위성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원래 연애를 해야 하는데 너는 왜 안 하고 있냐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연애를 안 하고 있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는 것처럼 와닿는다. 그렇지 않다. 연애를 안 하는 건 그냥 안 하는 거다. 아니 못하는 거다. 언제든지 연애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돈을 탕진할 생각이 있다. 그런데 왜 연애를 안 하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탐색 중이지.
-어디를? -주변을.
-주변이라 함은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관계적 거리를 말하는 거야?

이 질문이 꽤 마음에 들었다.

-너, 질문 좋다. 너 알지? 친구들이 아무리 힘들다고 SNS에 올려도 내가 좋아요 잘 안 누르는 거. 나의 좋아요는 언제나 진심이라는 거. 근데 방금 니 질문은 좋네 정말.

정말이다. 난 돈 들지 않는 ‘좋아요’ 버튼을 상당히 깐깐하게 아껴 쓴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알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된다. 좋아요 인플레를 막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다는 말의 가치가 더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웬만하면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좋아요는 쌔삥이다.

-아무튼 내가 탐색하는 주변은 둘 다 포함하는 거지만, 물리적 거리를 탐색하는 일은 거의 없지. 난 헌팅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거든. 헌팅이라는 게 저급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외모만 보고 사귀고 싶다는 등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풍미랄까. 그걸 최우선하지 나는. -외모는 안 보고?
-외모를 왜 안 봐. 봐야지. 외모만 보고 관심을 표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참 영양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어느정도 흘렀겠다. 슬슬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가자 슬슬. -응

저녁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홍대에는 사람이 몰려든다. 불나방처럼. 젊음의 거리라는 수식어가 순간 떠올랐다. 그런데 젊은이라는 건 법적인 나이를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홍대가 젊음의 거리인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때문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청춘이나 어른이나 그 기준은 법적인 나이가 아닌 생물학적 나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도 철없는 어른이 있는가하면 어린 나이에 이미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 청년도 있다. 그래서 이 젊음의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은 젊음을 대표할 자격이 얼마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끝이다. 궁금할 뿐이다. 더 나아가 설문조사를 한다거나 길거리 리서치를 하는 일은 없다. 그렇게 술집과 카페가 빼곡이 줄지어 모여있는 곳을 빠져나와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어라이벌>이라는 영화는 외국 감독이 만들었다. 외국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작사도 외국같고 연출한 감독도 외국인인 건 확실하다. ‘알라인 비달리에’이걸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프랑스쪽 같은 느낌은 든다. 가방을 들고 온 김에 기념으로 포스터를 한 장 챙기고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영화관은 빈 좌석으로 빼곡하다. 석현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아무도 없네.
-그러게,둘만 보는 거 아니야?
-형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보네.
-고맙지? -응, 고맙네.

아무도 영화를 예약하지 않으면 4시 15분에 상영될 예정이었던 ‘어라이벌’은 상영취소가 됐을 것이다. 독립스러운 독립영화를 자주 보는 나는 상영이 취소되는 일을 겪은 적이 한 번 있다. 상영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을 뿐인데,발권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아무도 예약하지 않아서 상영 자체가 취소됐다고 한다. ‘한 분이라도 예매하셨으면 취소는 안 됐을 텐데요’그 카운터 직원의 말에는 안타까움도 있었고 이런 일은 본인도 처음이라 신기함도 있었다.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빛은 완전히 차단됐다.콜라와 팝콘을 먹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들이 떠는 소리도 전혀 없다. 최적의 상태다. 이제 영화만 재미있으면 된다.

...

이 영화, 흥행은 물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부분 덕분에 상을 쓸어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기존의 영화와 다른 것 같기는 하다. ‘뭔가 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나고 집으로 편지 한 장이 배달된다. 그 편지는 엄마로부터 온 편지다. 처음 주인공은 엄마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 나라의 시간은 이승의 시간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사건을 예측할 수 있다. 엄마는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갔다. 천국의 사람들은 평생을 이승과의 인연을 끊으며 살지만 저승의 사람들은 이승의 고통을 겪으며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 아들은 기자가 된다. 엄마의 도움으로 특종상을 휩쓴다. 그러나 엄마는 지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되면 아들은 더 이상 특종을 취재할 수 없게 된다. 아들은 엄마에게 조금만 더 지옥에 있어달라고 말한다.


이런 내용이다. 상당히 충격적이고 불편한 내용이었다. 지옥에 있는 엄마에게 희생을 부탁하는 아들이 입장이 우리 사회를 묘사한 것 같았고, 특히 아들이 엄마에게 지옥에 있어달라고 부탁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장면이 압권이었다. 부탁을 고민한다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잠깐 놀랐지만 부탁하기로 결정한 그 때의 무표정하면서도 정의에 가득찬 연기가 놀라웠다.


-형 이 영화 되게 충격적인데. 근데 지옥은 어떻게 생겼을까. 감독이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 보여주네. 어떻게 지옥에서 편지가 전달되는 지도 안 보여주고. 궁금한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형이 주인공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할 거 같애?
-그걸 말이라고. 천국 가게 해드려야지.
-그런데 천국가면 엄마랑 이야기 못하잖아.
영화 속에서 엄마는 끝내 지옥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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