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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03. 2019

발레리나의 두 번째 여정

발레리나 김세연 인터뷰


2000년 유니버설발레단(이하 UBC)의 유럽순회공연. 무리한 일정으로 주역들이 부상을 입었고, <돈키호테> 영국공연은 취소해야 할 상황이었다. 제작진은 주인공을 해본 적 없던 무용수에게 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22살의 무용수는 겁 없이 도전했다. 그 후 그 단원은 UBC의 수석무용수가 되었다. 발레리나 김세연이다.


김세연은 늘 과감히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UBC의 수석무용수가 되었지만, 국내에 머물기보다는 보스턴발레단에 입단했다. 컨템포러리 발레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김세연은 하인스 슈푀얼리 예술감독의 제안을 받고 취리히 발레단으로 입단했으며, 3년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현재는 스페인 국립무용단에서 수석 무용수 중 최고 무용수를 뜻하는 프리메라 피규라(Primera Figura)로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 모두 제 몫을 다 해내는 보기 드문 무용수”(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하인츠 스포엘리) ”클래식 발레와 네오 클래식 발레로 영역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춤이 가능한 김세연이 꼭 필요했다”(스페인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호세 마르티네즈) 두 감독의 말처럼 김세연은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를 넘나드는 무용수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는 정체(停滯)와는 거리가 먼 무용수. 지난해 <대한민국발레축제>를 통해 첫 안무작을 선보이며 안무가로 데뷔하며 또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꼭 일 년 만에 신작과 함께 다시 서울을 찾았다.

 

안무 데뷔작 <죽음과 여인> 어떤 작품이었나요?

<죽음과 여인>에서는 ‘제가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어요’라고 안무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죠. 첫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임혜경 씨 같은 스타 무용수를 캐스팅하고 음악도 테크노, 라운지, 클래식, 1930년대 대중가요까지 다양하게 썼어요.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웃음). 


1930년대의 대중가요를 사용한 점이 독특했는데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적인 음악을 넣고 싶었는데, 반드시 국악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국악은 이미 다른 분들이 많이 시도했으니까요. 윤심덕의 ‘사의 찬미’, 김해송의 ‘청춘계급’을 사용했어요. 오래된 레코드 음반 특유의 음질도 매력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첫 작품다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넣었으니까요. 영리하게 시도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작품도 비슷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안무가의 두 번째 작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고민을 했고, 춤에 집중한 작품을 보여주기로 한 거죠. <죽음과 여인>은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었고, 이번에는 주제와 이야기 없이 오직 발레만 보여줬어요. 


<Triple Bach>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호세 마티네스 예술감독이 처음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네. 프로무용수로 막 시작한 단원들을 위한 안무를 의뢰했어요. 그래서 어려운 동작들보다는 무용수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동작을 마음껏 보여주도록 안무를 구성했어요. 예를 들면, 점프를 잘 뛰는 무용수를 위해서 높은 점프를 할 수 있는 파트를 만들어주는 등 개인의 특기나 개성을 살릴 수 있게 무대를 구성했어요. 


<Triple Bach>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이 이번 작품의 주요 음악인데, 이 곡에서 3은 의미있는 상징이에요. 곡을 연주할 때는 주로 바이올린 3대, 첼로 3대, 비올라 3대로 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안무도 세 파트의 파드되(2인무)로 구성했어요. 숫자 3이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파트로 구성되는 파드되는 각각 어떻게 구성했나요?

각각의 파드되는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파드되에서는 여자 무용수가 남자 무용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싱그러움이 있고, 두 번째 파드되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회피하는 위태로움을 표현하고 있고, 세 번째는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끌어안는 느낌으로 표현되었어요. 


바흐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로지 춤에 집중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음악을 선택하는데도 고민이 많았어요. 바흐의 음악은 수학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이 강해서 어렵지만 안무가로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바흐의 음악에는 변주가 많아서 작업하기 쉽지 않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어요. 그 패턴을 파악하고 안무를 맞추었어요. <Triple Bach>에서는 무용수들의 동작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안무에 맞춰 음악이나 악기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수없이 무용수로 무대 위에 올라갔지만안무가로서는 이제  번째 작품을 선보였습니다무대 밖에서 무대를 지켜보는  어떤 기분인가요.

제일 자신 있는 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무대 밖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건 색다른 기분이에요. 안무가로서는 겨우 몇 번 활동했을 뿐이고, 아직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이니까요. 혹시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하고요. 


무용수나 안무가나   몸짓을 통해서 표현하지만 안무가는 무용수를 통해서 전달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을  같습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 표현해야 하는 감정이 슬픔이라고 하면, 슬픔에도 애절, 비통함, 절망 등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저는 그 감정을 캐치해서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좋은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안무가는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보다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사람을 더 원하니까요. 가능한 무용수를 찾는 게 안무가로서는 가장 힘들죠. 


그런 능력은 훈련으로 향상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정 부분 타고나기도 하고 훈련되기도 하죠. 김주원 씨, 강수진 단장님, 김용걸 씨, 김지영 씨 등이 그런 표현이 되는 분들이에요. 그런 능력을 예술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의 감정은 다양하고 복잡하잖아요. 몸짓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표현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죠. 


국내에 머무르면서 작품을 만들 계획은 없나요?

국내 복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하지만 제가 여러 발레단에서 많은 아티스트들과 훈련하고 작업하면서 배운 것들을 한국의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공개오디션으로 <Triple Bach> 무용수를 선발하기도 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무용수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요. 인맥으로 많은 일이 이뤄지곤 하잖아요. 저는 운이 좋아서 유니버설발레단에도 들어가고 성장도 했지만,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인맥도 없다면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지죠.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본인은 무용수로 살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7살에 무용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겨울 정도로 끊임없이 관리했어요. 먹는 것, 걷는 것, 앉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자는 것 등 모든 생활을 관리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관리의 강도가 심해지니까 더 힘들었어요. 전과 똑같이 리허설하고 무대에 서야 하는데 몸과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니까요. 서른 살 즈음이 되고 변화를 체감하면 슬럼프가 오는 거죠. 그리고 과정을 견디고 나면 발레를 계속하기 위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게 되죠. 변화를 감당하는 데 엄청난 관리가 필요했어요. 무용수라면 모두 비슷하게 겪는 과정인 것 같아요. 


후배 양성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나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작년과 올해에 선보였던 안무작도 계획한 것이 아니었어요. 언젠가는 하고 싶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우연히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후배를 가르치는 것도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배운 것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무용수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에요. 가끔 ‘만약에 내가 사고로 죽으면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해봐요. 혼자만 알고 후배들에게 안 가르쳤다는 게 가장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 가르쳐주고 싶어요.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됩니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스토리가 있는 중작의 드라마 발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만만치 않은 작업이겠죠. 우선은 <신데렐라> 같은 익숙한 동화에서 찾을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출처: http://theartpark.co.kr/201807_%EB%B0%9C%EB%A0%88%EB%A6%AC%EB%82%98%EA%B9%80%EC%84%B8%EC%97%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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