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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03. 2019

천천히 확실하게

뮤지컬 <록키호러쇼> 연출가 오루피나 인터뷰


오루피나는 신중하게 답한다. 어떤 질문에도 정답을 찾아 보여주려는 듯 최선을 다해 단어를 고른다. 그렇게 고른 대답에서는 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자신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말을 시작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그녀가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록키호러쇼>를 통해 데뷔한 스물여섯 살의 연출가는 어느새 데뷔 10년 차 연출가가 되었고, 다시 데뷔작의 연출을 맡고 있다. 10년을 돌아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오루피나. 10년 전보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동안 인터뷰를 고사해왔다고요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도 연출을 알아가고 있는 단계여서, 아는 척하고 말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연출가 혼자 뮤지컬을 만들지는 않잖아요. 배우와 스태프들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하나의 뮤지컬로 만드는 것인데, 제가 인터뷰에 나서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작품을 완벽히 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관객들이 봐주면 좋겠다는 방향은 생겼어요. 


데뷔를 이른 나이에 했는데어떻게 가능했나요?

대학교 교수님이었던 이지나 연출님이 기회를 주셨어요. 조연출 경력을 5년 정도 쌓았을 때였는데, 음악적인 능력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록키호러쇼>는 노래와 쇼의 비중이 큰 작품이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강하게 믿어주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하고 싶어서 공부했었는데, 리듬감이 좋다고 수업시간에 연습해볼 수 있는 기회도 주곤 하셨어요. 덕분에 말도 안 되게 스물여섯 살에 연출가로 데뷔를 하게 된 거죠. 


좋은 기회이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같아요.

처음에는 무서웠죠. 배우와 스태프도 저보다 훨씬 높은 선배들이라 부담스러워서 못할 것 같다고 고사를 했었어요. 그래도 당시 캐스팅이었던 송용진, 이영미, 박선우 등 절반 정도의 배우들이 조연출을 하면서 함께 작업한 분들이었는데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줘서 결국 하게 됐죠. 


그때의 연출가 오루피나를 평가한다면요?

그때는 작품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록키호러쇼>가 가지고 있는 B급 컬트문화를 경험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는 무엇이며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표면적으로 공부하고 연출해야 했기 때문에 확신이 없었어요. 지금보다 귀도 더 얇았고, 배우나 스태프가 주는 아이디어를 잘 정리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년 동안 공연에 참여하면서 연출이라는 포지션이 하는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연출가는 없던 것을 대단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하나로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이제는 배우와 스태프를 설득하고 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자신에게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록키호러쇼> 끝나고 다시 조연출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어요. 일단 작품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록키호러쇼>에는 이지나 연출가가 저를 믿고 추천했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경력도 없는 저를 연출로 쓰는 데 위험부담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록키호러쇼>를 마치고 나서 연출은 섣불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은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 사람과 함께 일하는 능력 등 실력을 더 다져야 할 것 같았어요. 스스로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조연출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쉽지는 않았나요?

연출님이라고 듣다가 조연출님이라고 들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자존심 상할 정신이 없을 정도로 연출이라는 직함이 부담스러웠고,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연출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오히려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저도 천천히 준비할 수 있었어요. 3년 동안은 조연출, 그다음에는 협력연출 그리고 다시 연출가 경력을 다시 쌓기 시작했어요. 단계를 꾸준히 밟은 덕분에 더 탄탄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록키호러쇼>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관객들과 함께한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록키호러쇼>는 관객들이 마음을 열고 즐길 준비만 되어있으면, 관객들은 공연에 참여하고 배우는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록키호러쇼>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즐긴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공연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관객은 공연을 관찰하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기본적인 형태의 공연이 아니에요. 제가 10년 전에 연출했을 때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했고, 관객들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경험도 부족했어요. 


하지만 관객들을 극에 참여시키는  쉽지 않을 텐데요.

작년에 다시 <록키호러쇼>를 다시 맡기 전까지 아동극, 정극, 대학로 소극장 등 연출하면서 관객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죠. 관객들을 공연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런데 <록키호러쇼>는 작품 자체가 판이 잘 준비되어 있어요. 5년 전에 영국에서 넌버벌쇼 공연을 했던 적이 있어요. 놀라웠던 건 영국의 관객들은 공연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인다는 거였어요. 신나면 환호고 하고, “yes, right!”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록키호러쇼>라면 한국에서도 그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작년에 공연하면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서 이번 시즌 공연이 더 기대돼요.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연출적으로 어떤 변화를 줬나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대사를 하는 장면을 넣었어요. 예를 들어, <록키호러쇼>의 대표적인 장면 중에 외계행성의 캐릭터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타임워프댄스가 있어요. 리프라프 역이 그 안무를 하기 전에 “자,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라고 관객들에게 말을 해요. <록키호러쇼>를 좋아하는 외국의 매니아들은 타임워프댄스를 할 때가 되면 알아서 따라 추는데, 한국의 관객들은 아직 소극적인 면이 있어요. 작년 공연에서 무대 위 배우들이 관객들을 봤는데, ‘우리 영상으로 춤 배워서 왔는데, 언제 하면 되지?’하는 것 같았어요. 그럼 놀 수 있게 판을 깔아주자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벽만 깨주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추구하는 바가   드러나는 공연이 되겠네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죠. 연출을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제가 조명을 넣고 연출적인 언어로 포인트를 주더라도 관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바로 공연이잖아요. 100명의 관객이 모두 연출자의 연출 포인트를 보게 할 순 없어요. 그게 바로 관객들이 공연을 좋아하고 제가 공연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 가지 포인트에만 신경을 쓰지 않고, 보는 재미가 다양하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별히 신경  연출 포인트가 있나요?

사실 <록키호러쇼>는 굉장히 야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저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상하게 만들어야 진짜 야한 것 같아요. ‘어? 저건 혹시 그런 의미인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들로요. 작년에는 관객들이 어디까지 수용할지 몰라서 저도 조금 소극적이었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야한 장면들에 힘을 실었어요. 

관객들이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디테일이 있나요?

개인적인 기량과 표정 연기를 잘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다 같이 하는 안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군무가 아니라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소품을 이용해서 다르게 연출했어요. 예를 들어, 팬텀 역에 캐스팅한 정다영씨는 전 리듬체조 선수였어요. 리듬체조 선수는 단순히 무용만 하는 게 아니라 리본, 볼, 곤봉, 훌라후프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런 요소를 잘 활용하면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의 팬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루피나 스타일 뭐라고 설명할  있을까요.

연출가로서 자신감이 없는 얘기일 수도 있긴 한데, 저는 아직까지 장기라고 내세울 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연출가들 중에는 블랙코미디를 잘하거나, 미장센이 훌륭하거나 스타일이 분명한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스타일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배울 것도 많고, 해봐야 할 것도 많아요. 저한테는 스타일보다 어떤 작품을 맡든지 캐릭터와 상황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해요. 저는 대본을 처음 접하면, 이 작품은 무용 중심의 작품 아니면 캐릭터 중심 등 작품마다 특징을 다르게 판단해서 연출하는데, 저만의 스타일보다는 작품의 차이를 살리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한 작업이에요. 그렇게 하나씩 연출하다가 보면 저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연출할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인물을 살리려고 하는 게 공통점인 것 같아요. 뮤지컬 <마마, 돈크라이>에서는 프로페서V와 백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전사(全史)를 수정했어요.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에서는 이상 역 외에 열세 명의 배우가 더 있는데, 그들을 단순한 앙상블이 아니라 이상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예술인으로 설정했어요. <록키호러쇼>도 프랑큰 퍼터부터 다른 주연, 조연은 말할 것도 없고 팬텀까지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주연 따로, 앙상블 따로 무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앙상블일지언정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있을 것이고, 무대 위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이 있거든요. 그것이 외계인의 삶일지, 뱀파이어의 삶일지 사람의 삶일지는 작품마다 다르고, 각 작품의 상황과 배경에 맞는 삶을 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연출의 공통점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에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이 있나요?

배우들과 얘기를 많이 해요. 대본을 펴놓고 진지한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수다를 많이 떨어요. 연출자는 작품의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무대, 조명, 음향, 소품 등 여러 가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잖아요. 캐릭터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가 하는 고민의 양을 제가 못 따라가요. “그 신에서 자넷이 이렇게 행동하면 좋겠어요” “제 생각에는 콜롬비아가 이렇게 반응했을 것 같아요”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눠요. 연습기간 내내 작품이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 캐릭터가 디테일하게 구축되고 정리되니까요. 


배우들끼리의 대화도 많이 권하나요?

그렇죠. 프랑크 퍼터를 맡은 배우 두 명이 “그 말 되게 프랑큰 퍼터 같다”고 대화하면 머릿속에 프랑크 퍼터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공유되거든요. 보통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인데, 연출자가 배우들에게 캐릭터를 주입식으로 알려주면 저도 재미없고, 연기하는 사람도 재미가 없고, 관객들도 재미가 없죠. 똑같은 정장을 입었을 때 소화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캐주얼하게 보일 수도 있고, 시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요. 물론, 캐릭터마다 공통되는 큰 맥락은 있어야 하죠. 큰 맥락을 이해하면 기둥은 흔들리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둥을 잡기 위해서라도 같은 배역끼리 수다를 많이 떨게 해요.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중요하게 살려야 하는 이야기와 조금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돼요. 


지금까지 연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뮤지컬 <프리실라>에 협력연출로 참여할 때였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신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제가 아들의 대역으로 리허설 무대에 올라갔고, 아버지 역할을 맡은 마이클 리 배우가 아들에게 “넌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장면이었어요. 마이클 리 배우는 평소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그런 분이 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위로를 해주니까 마치 “너, 고민 많고 힘든 것 알아”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동시에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하고 있고, 그런 작품의 일원으로 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했어요. 다른 스태프와 배우도 저처럼 좋은 작품을 함께 하고 있다고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잔잔하게 느끼더라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어요. 


<록키호러쇼> 오루피나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요?

연출가로서 의지를 가지게 하는 작품이에요. 10년 전에 <록키호러쇼>로 처음 연출을 하고 좌절했어요. ‘나는 연출할 사람이 아닌가 보다’ ‘연출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만약 나중에도 계속 연출을 하고 있다면 <록키호러쇼>를 꼭 다시 연출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에요. 지금은 10년 전에 비해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지겠죠. 


사람들에게 어떤 연출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와 함께 작업을 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는 변하지 않고, 작품에 대해 대화하는 꾸준한 연출가가 되면 좋겠어요. 저는 제가 존경하는 이지나 연출님처럼 아이디어도 풍부하고 직감도 훌륭한 연출가는 아니에요. 그런 능력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대신 천재 같은 능력을 가진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조율하는 게 제가 잘하는 능력인 것 같아요. 사람들과 신뢰를 쌓고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출처: http://theartpark.co.kr/201808_%EC%97%B0%EC%B6%9C%EA%B0%80%EC%98%A4%EB%A3%A8%ED%94%BC%EB%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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