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2)

by 김작가

'안녕하세요. 김희준이라고 해요ㅎㅎ윤지 소개로 연락드려요ㅎㅎ'

ㅎㅎ와 ㅋㅋ의 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웬만하면 다 ㅋㅋ를 쓰고 ㅋㅋ를 쓰기에 애매하다 싶을 때는 ㅎㅎ를 쓴다. 예를 들면 처음 만난 사이나 헤어진 여자친구에게는 ㅎㅎ를 쓰는 게 맞다. ㅋㅋ[키키]의 발음기호처럼 얼마나 경박스러운가. 어색한 사이나 어색해진 사이에 경박한 웃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네 안녕하세요^^시간은 언제가 괜찮을까요?'

이 여자 거침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는 사람. 숨김 없는 사람.

'이번주 수요일 저녁6시 합정동에서 볼까요?'
'네 좋아요 ㅎㅎ'
'네 ㅎㅎ'

대화는 이렇게나 간단하게 끝났다. 사실 할 얘기가 없는 순간이다. 그녀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녀를 모른다. 그렇다고 알아가기에는 둘의 운명이 불안하다. 한번의 소개팅으로 끝날 사이가 될 수도 있고 서로 얼굴도 모르는데 이것저것 터놓는 게 굉장히 어색하지 않나.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내일 모레 수요일이면 이틀 남았다. 팩을 사서 오랜만에 피부관리를 하고 운동도 좀 해야겠다.

수요일, 첫 번째 소개팅
난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여자라는 동물은 더이상 나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비록 남중 남고를 나와 대학교에 들어가 1학년 때는 여자와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더이상 아니다. 나를 주눅들게 하는 건 나보다 20cm나 더 큰 남자애들 밖에 없다.
합정동은 홍대 바로 옆에 있다. 정확히 홍대라는 지역은 서교동과 동교동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합정동은 동교동을 지나 서교동 옆에 자리한 동네다. 합정동은 홍대의 번화가적 느낌도 나지만 골목골목은 예술가마을같다. 이게 합정동에서 만나기로 한 이유다. 데이트코스 아니, 소개팅 장소로는 더없는 장소가 아닐까.
여섯시가 지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뭐하는 사람일까. 카톡을 해보니 차가 막혀서 조금 늦는단다. 그래, 퇴근시간이니까 차가 많이 막히겠지. 지하철로 오면 안 막힐 텐데, 소개팅 약속에 5분 이상 늦다니 매너가 좀 없네. 여자는 6시 8분에 도착했다. 많이 미안해했다. 그래, 미안해해야지. 약속을 늦는 건 정말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개팅인 것을 감안해서 저녁엔 오꼬노미야끼를 먹었다. 맘같아서는 삼겹살이나 치킨이지만, 잔뜩 힘준 옷에 고기냄새가 베는 것도, 불편하게 치킨을 뜯는 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일식이 이럴 때는 그러한 적당함에 아주 적절하다. 정갈한 분위기에 정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메뉴. 또 이 집은 예전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 야끼소바를 무료로 준다고 했다. 난 전에 이 집의 후기를 작성해놨다.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이지만 난 모르는 척 이 집으로 골랐다.

여자의 이름은 김정민, 나이는 24살. 서울 소재 간호학과를 다니고 있다. 나보다 4살이 어리지만 나이만큼 어려보이지는 않는다. 맥주를 마시겠냐고 물어봤지만 요즘 약을 먹고 있어서 술은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전공은 적성에 맞는지를 물었고,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난 전공은 별로지만 복수전공이 재미있다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빠는 전공이 뭐에요라는 반응을 이끌어냈고, 그 질문을 발화점으로 내 인생 이야기를 적당한 길이로 이야기해줬다. 난 최근에 봤던 영화에 대해 질문을 하고 책이나 TV에 관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는 내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오꼬노미야끼와 야끼소바는 금방 사라졌다. 내가 거의 다 먹었다. 말을 많이 해서 배가 고팠다. 계산은 내가 했고, 디저트를 먹겠냐는 물음에 자정까지 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쉽다며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이란 없을 것 같았다. 남녀 사이에 바쁘다는 핑계는 관심없다는 거절의 표시로 굳어진 지 오래다. 난 소개팅이 끝나고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모레도 글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첫번째 소개팅이 끝났고 실패 원인을 분석하지 않았다. 외모가 마음에 안 들거나, 취향이 안 맞거나, 둘 중에 하나다. 어쨌건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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