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좁아서 그렇다, 게을러진 건

에디터의 일기

by 김작가

2020년 1월 28일 화요일 날씨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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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지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네 군데의 집을 옮겨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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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집은 기숙사였다. 지은 지 일 년 정도 되었던 신축 기숙사. 아버지는 새집증후군이 없을까 걱정마져했던 갓 지어진 집. 서울도 낯선데 같이 살게 된 룸메이트마저 낯설었다. 나와는 6학번이나 차이가 나는 01학번 선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이좋게 헤어지지 못했다. 그 룸메는 내 침대 위에 어지럽다고 잔소리를 했고, 그게 본인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했다(정신이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매일 술만 마시고 공부하지 않는 내가 한심해 보였을 거다. 반대로 내겐 그 사람이 꼰대처럼 보였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그때 나는 역사스페셜을 보고 있었던가?) "그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라고 말했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취업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번역하면 '너 잘되라고 하는 말' 정도가 되겠지. 그 형은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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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은 친형이 살던 원룸이었다. 형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의대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형과 나는 맞지 않았다. 청소를 할 때 창문을 어느 정도 여느냐 같은 사소한 것부터 선풍기를 회전하고 말고의 문제까지 하나하나 부딪쳤다. 방도 하나였으니 공부를 하는 형에게는 내가 방해 그 자체, 나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두 번째 룸메도 맞지 않았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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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집은 패스. 크고 넓은 집이었지만 반지하였고, 해가 들지 않았으며, 별의별 곤충이 나오며, 옆집 가족이 티브이를 보고 떠드는 소리마저 들리는 집이었다. 넓긴 했다. 최근에 살아본 100만 원이 넘는 셰어하우스보다 더 넓었다. 하지만 여름엔 곰팡이 냄새에, 시도 때도 없이 고장 나는 세탁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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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세 번째 집과는 반대로 좁지만 풀옵션이다. 해도 잘 들고, 전세에 인터넷도 무료, 집주인도 꼼꼼하게 관리한다. 하지만 최근에 셰어하우스에 살아보고 나서 알았다. 집이 바뀌면 자연스레 라이프스타일이 바뀐다는 걸. 셰어하우스에서는 밤엔 일찍 자고 아침엔 일찍 눈을 떴으며, 매일 1편의 영화를 봤고, 홈트도 매일 했다. 그게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류했기 때문인 것 같다. 독서하는 곳, 노트북 하는 곳, 운동하는 곳을 분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지금은 테이블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뉴스도 보고 바로 옆에서 잠을 잔다. 공간이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실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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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