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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03. 2015

<능력자들>, 세상 모든 덕후를 위하여

다시 시작하는 취향토크쇼, 이번엔 '덕후문화'다

▲MBC<능력자들>의 한 장면 

고등학생 때였던가. 친구가 검은색 표지에 강렬한 궁서체로 휘갈겨진 책을 보고 있었다. 무슨 책을 보냐고 물으니 조용히 제목을 보여줬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하늘로 승천할 것만 같은 서체만큼이나 저돌적인 제목이었다.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열심히 노력하라는 한줄로 요약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MBC 추석특집 예능 <능력자들>을 보니 그 문장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파일럿이니 정규프로그램이니 하는 말도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조금만 TV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제 명절이 정규의 벽을 넘기 위해 검증위한 스테이지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리고 <능력자들>은 아마 검증을 통과한 것 같다. 예능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요즘 예능이 모두 재미있지는 않다. 이것은 철저히 까칠한 나의 관점이기는 하다. 재미를 오직 웃음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고 신선도와 의미마저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얼마나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는지,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지,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게 포장하는지 이것들이 모두 조합되었을 때, 두 엄지가 올라간다.


"사실 덕후를 다룬 프로그램의 시초는 <화성인 바이러스>죠"


김구라의 말처럼 <능력자들>은 덕후를 다루는 최초의 예능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소재를 썼는냐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냐는 완벽히 다른 문제다. <화성인 바이러스>(이하 '화성인')의 경우 프로그램의 타이틀에서부터 '화성인'과 '바이러스'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려는 의도는 없다. 얼마나 특이한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출연자들 역시 그 특이함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인형을 사랑하는 십덕후나 D컵 여자 등이 그 예일 것이다.


그렇기에 <능력자들>은 <화성인>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떠한 이유로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없고, 소재주의에 빠지지도 않으려고 한다. 물론 어느정도의 자극성이 있어야 시청률이 나오고 그래야 경영진이 만족하며 꾸준히 지원해주기는 할 것이다. 더군다나 시청률주의 MBC이지 않은가. 시청률 측면에서 약간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1회만 보고 평가를 했을 때, <능력자들>은 의미와 재미를 갖춘 프로그램이었다.


무한도전, 사극드라마, 치킨, 오드리햅번 총 네 명의 덕후가 출연했고 능력들을 뽑내는데,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검증단의 역할이 미미하고 취향에 관한 토크프로그램을 김구라가 이미 했으며(SBS<매직아이>) MBC에서 유세윤과 라디오스타에 출연을 했다는 점이 프로그램을 약간 식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김구라만큼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본다면 막상 떠오르지 않는다. 덕문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진행을 한다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대로 일발인스러운 장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유세윤-예지원-김태원과의 호흡도 좋았기에 패널 교체는 없어도 될 것 같다. 다만 백현은 경제적인 효과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역할이 무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혼자산다><마이 리틀 텔레비전><복면가왕>등 MBC가 의외로 새로운 컨셉의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내고 있다. <능력자들>이 그 뒤를 이을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지만, 되기를 바란다. 이런 '본격' 덕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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