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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26. 2021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리뷰

스포일러 있음


1. 스파이더맨은 다른 히어로와 다르다. 이기기 위해 간악한 술수를 쓰지도 않고 대단한 인물이 되겠다고 야망을 품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친절한 이웃이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하려고 하며, '정의'보다는 '선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히어로다. 이 점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매력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2. "너는 옳을 일은 했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같은 대사와 함께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하 노웨이홈)에는 교훈적인 메세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만약 10년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큰 감흥이 없을 수도 있었다. 뻔한 히어로 영화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데드풀, 아이언맨 같은 괴짜 같은 캐릭터에 밀려 큰 빛을 못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착한 이야기는 참 오랜만이 아닌가.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 파커에게 "니가 아직 아이라는 걸 깜빡한다"고 말하면서 잘못을 꾸짖으려다 말지만, <노웨이홈>에 나오는 때 묻지 않은 생각은 어쩌면 그가 아직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피터 파커뿐만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피터의 개인적인 부탁을 당연히 거절했어야 할 닥터 스트레인지는 '함께 우주를 구한 사이'라며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다가 사고를 치게 된다. 주문을 여섯 번이나 바꾸게 된 이유에는 피터 파커의 우유부단함도 있지만, 닥스의 나이브한 일처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쓰라고 마법사가 된 것은 아니니까 더 조심했어야 했다(게다가 어른이니까).


3. 세대를 구분 짓는 건 나이가 아니라 기억이다. 같은 사건(문화적 사건이나 정치적 사건이나)을 겪은 사람들은 공통의 희로애락을 안고 산다. 그리고 10년 넘게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마블은 세대를 잇는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둘 다 마블을 좋아한다면 어떤 히어로를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 하나만 던져져도 할말이 끊이질 않겠지. 싸이월드처럼, 무한도전처럼, HOT, SES처럼 오랜 기간 지속된 문화 콘텐츠는 잇거나 구분하는 하나의 점이 되는 것 같다.


4.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 그리고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의 등장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영화.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자신 때문에 메이 숙모를 잃은 피터 파커가 토비 맥과이어에게 위로받는 장면이다. 나는 19년 전 피터 파커의 슬픔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의 피터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도 못지않게 힘든 일을 겪었고 일어났음을 알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2002)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이 개봉할 때만 해도 이런 그림이 만들어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역시 오래 살고 별일이다. 이런 한 장면의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19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영화로 이런 일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소중한 선물이다.


5. 솔질히 말하면, 피터 파커가 닥스를 방해한 행동은 처음에는 몰입을 깨뜨릴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이런 막무가내 주인공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보다보니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음...사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너무 과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그게 아니었어도 어차피 문제는 발생했을 것이고.


6. 스파이더맨을 위로하는 두 스파이더맨의 장면도 슬프지만, 엔딩도 만만치 않게 울컥하게 만든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건 타인의 기억이다. 영화 <사라진 시간>에 보면 내가 나를 기억하지만 모두가 나를 모르는 상황에 빠진 형사가 나온다. 그 형사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반면에 피터 파커는 우주의 평화를 위해(본인이 초래하긴 했지만), 모두가 자신을 잊도록 선택한다. 몇 시간 전까지 서로 사랑했던 연인이 자신을 기억 못 하는 상황에서 피터의 마음을 어땠을지 상상조차 힘들다(하지만 피터야,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으니까 새로운 사람은 또 만나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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