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by 송병걸

“이 책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질문을 받은 작가는 웃으며 대답했다.
“서른 해요.”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대답은 농담이 아니었다.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는 수십 번의 실패를 겪는다. 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몇 날며칠을 살아내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단지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엮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내면 깊숙한 시간, 감정, 경험을 조용히 꺼내어 내보이는 고백이자 헌신이다.

창작자에게 창작은 생존이고 생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빛나는 순간만을 본다. 책이 출간되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상을 타는 순간들. 하지만 그 화려한 순간 뒤에는 수없이 거절당한 원고, 답이 없는 이메일, 좋아요 한 번 받지 못한 게시물이 있다.

이렇게 어렵게 탄생한 창작물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가져다 쓴다. '좋은 문장이라서 퍼왔어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출처는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창작자의 권리를 지운다. 심지어 요즘은 AI가 그들을 위협한다.

'AI가 그려준 그림', 'AI가 써준 글'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사람이 경험으로 쓴 이야기들이 밀려나고 있다. AI는 단 몇 초 만에 수천 자의 문장을 토해낸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 글에는 땀도, 삶도, 흔들리는 마음도 없다. 그저 과거 데이터의 반복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창작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기술은 편리함을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창작의 가치를 흔들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쉽게 복사되고 공유된다. 클릭 한 번으로 그림을 저장하고, 드래그 한 번으로 글을 복사한다.
하지만 창작물은 '소유할 수 없는 노동'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수면 부족이, 생활고가, 인간관계의 단절이, 끝없이 맞서 싸운 자존감이 녹아 있다.

창작자가 무엇을 보호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존중'이다.
저작권은 법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이다. 누군가의 시간을, 감정을, 마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물론 나 역시 처음에는 저작권이 낯설었다. 내 글을 누가 무단으로 퍼간다는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어쩌겠어, 그냥 넘어가야지'라는 체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침묵이 창작자를 더 고립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저작물의 가치도, 저작자의 존재도 점점 희미해진다.

특히 요즘은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을 구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많다. 나는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쓰고, 사람은 마음을 기반으로 쓴다.
AI는 완벽하지만 낯설고, 사람은 어설프지만 진실하다.
그리고 진실은 독자의 마음에 도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의 창작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한다는 건 무작정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사회가 함께 공유하고 지켜주겠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읽고, 공감하고, 인용할 땐 출처를 밝히고, 가능하면 창작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자주 지우고, 자주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 물었다. “이 글 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나는 대답한다.
“내 인생 전체요.”

그러니 그 글을 쉽게 훔치지 말아 달라.
그 글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눈물이 있다.
저작권은 바로 그것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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