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나와 비슷한 숨은 정원

중년의 정원 보문정에서

by 송병걸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니, 계절의 변화를 예전보다 더 자주 의식하게 된다. 싹을 틔우는 봄의 설렘도, 무성한 여름의 기세도, 쓸쓸한 가을의 황금빛도, 고요한 겨울의 숨결도 모두 예사롭지 않다. 마치 내 안에도 그들처럼 시간이 흘러 계절이 깊어진 탓이리라.

그런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끼는 곳이 바로 보문정이다. 경주의 보문단지 한켠,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를 끼고 만든 이 정원은 자연을 흉내 낸 인간의 손길 속에 묘한 정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 완벽하지 않기에 더 편안했고, 자연과 인간의 흔적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 오히려 더 깊은 위로를 안겨주는 장소였다.

송과장 업무용_사진_20250411_6.jpg 2025.04.06. 촬영 한 벚꽃이 만개한 보문정

정자에 앉아 있으면 호수를 따라 부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 바람엔 오래전 신라의 기억도, 80년대 보문단지 개발의 열기도(보문관광단지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집중 개발되었으며 필자의 아버지는 당시 관광개발공사 직원으로 단지 개발에 많이 기여하셨고 필자가 어린 시절 보문단지 곳곳에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고요한 사색도 실려 있다. 흩날리는 버들잎 사이로 빛이 스며들 때, 내 안에도 한때는 푸르고 생기 넘쳤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듬어지고 차분해진 감정들이, 마치 이 정원의 고요한 연못처럼,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

보문정은 젊은 날의 화려함을 재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세월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벚꽃이 화려할 때 누군가는 그저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 말할지 몰라도, 나는 그 속에서 나이 든 마음이 쉴 곳을 찾았다.

이 정원처럼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쉼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격정과 속도보다는, 잔잔함과 여운을 남기는 삶. 보문정은 말없이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송과장 업무용_사진_20250411_1.jpg 2025.04.06. 촬영 한 벚꽃이 만개한 보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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