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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Oct 11. 2019

33. 평범한 직장인의 생존 기술

(Week 16) 평타는 치고 삽시다


어느 직장이건 고수가 있다. 부서마다 한두 명 정도의, 소위 말하는 '에이스'가 존재한다. 그들은 핵심 업무 분장 시 반드시 호출을 당하고는 이내 성과를 내거나, 상사가 묻기도 전에 필요한 자료를 귀신같이 구해오곤 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노력하는구나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그저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 핵심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업무지만 그럭저럭 해내고, 지난 보고서 수치를 업데이트하거나 진행 경과를 체크할 정도의 능력은 갖춘 '평범한 직장인'이다. 기대치가 낮기에 크게 깨질 일은 없다. 다만 과거에는 주로 근면 성실로 승부해 왔다면 지금은 시대가 조금 변해 그것만으로는 살아남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뭔가 항상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어딘가 한칼이 부족한 사람들,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인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건, 그들 중 일부는 늘상 상사에게 구박받고 동료들의 눈치를 보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부장님의 개인용 드럼으로 전락해 시도 때도 없이 '욕받이'가 되기도 한다. 열심히 한다고는 해도 좀처럼 티가 안 나고, 오히려 열심히만 하지 말고 잘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별거 아닌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남들보다 몇 배는 크게 깨진다. 그런 안타까운 분들을 관찰해 보면 몇 가지 흔한 증상이 발견된다.



신입, 제발 모르면 좀 물어보세요

신입 : 저... O과장님. 아까 지시하신 부분이 여기 숫자 채우라는 거 맞나요?

과장 : 어, 왜?

신입 : 자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이 안 와서요.

과장 : 휴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 가르쳐줘야 하는 건지. 요즘 신입들은 스펙만 좋지 도대체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니깐.


회사에 처음 들어오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무리 인턴 경험이 많고 좋은 스펙으로 입사를 했다 해도 입사한 순간부터 시스템 사용법, 회사 고유의 언어, 업무 히스토리, 유관부서 인력 현황까지 생소할 수밖에 없다. 모르면? 잘 아는 누군가를 찾아 물어봐야 한다. 하지만 차근차근 알려주는 좋은 선배도 간혹 있지만 많은 분들은 본인 업무에 매진하느라, 혹은 본인도 과거 대충 해온 일이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본인 부서가 아닌 유관부서에 문의한 경우 신입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대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초반에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몇 번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하고 나면 많은 신입들은 좌절하고 혼자 고민하기 시작한다. 혼자 힘으로 해내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란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지식인은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조직에 금세 적응하고 성과를 내는 신입, 혹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경력들은 대체로 넉살이 좋고 사람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르면 계속 물어야 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자존심 상하고,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기 일쑤라도 물어야 답을 얻을 수 있다. 수명 업무뿐 아니라 관심 가는 업무가 있다면 끝내 물어 알아내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선배라는 분들도 결국 사람인지라, 귀찮다고 짜증 내는 듯해도 자꾸 묻고 잘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좋은 평을 하기 마련이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질문은 결국 직장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성과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게끔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중견, 제발 찾기 전에 중간보고 좀 하세요

부장 : O차장, 이번 주 금요일에 본부장님 보고 드려야 하는 거 알지? 언제쯤 볼 수 있지?

차장 : 아, 부장님 그게 아직 좀... 마무리가 안되어서요.

부장 : 묵은지로 푹 익혀서 토요일에 가져올 생각인가 보네? 겉절이라도 내오라니깐.

차장 : 아닙니다. 아직 OO부서 의견도 못 받고 해서... 최대한 내일까지는 초안 보고 드리겠습니다.


부장님이 찾으시면 이미 늦은 거야


신입 시절 회사에서 잘 나가는 한 선배가 해주신 얘기다. 가만히 보면 그 선배는 일이 끝났건 끝나지 않았건 간에 수시로 진행상황을 말씀드려 업무를 조율해 나갔고, 다른 분들은 묵묵히 일을 하다가 불시에 호출을 당해 깨지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선배의 말씀을 불문율처럼 가슴에 새겨 왔다. 그런 덕분인지, 다행히 아직까지 여러 부서를 거치는 동안 한 번도 부장님의 욕받이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상사는 늘 외롭고 초조하다. 일을 직접 하기보다는 지시하고 기다리는 역할이라 조바심이 나기 일쑤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갈등한다. 잔소리를 할지, 진득하게 기다릴지. 꼰대가 되기는 싫고, 그렇다고 넋 놓고 기다릴 수 만도 없는 게 우리 부장님들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이 반드시 필요한 게 중간보고이다. 많은 분들이 상사와의 대면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머리를 끙끙 싸매고 일을 하다가 결국 호출을 받고, 깨진다. 만약 오늘 찾을 것만 같았은 일을 찾지 않으셨다 해도, 오늘 하루 무사히 넘겼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내일 더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거창하게 보고라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상사가 원하는 납기일 전에 구두로든 메신저로든 혹은 초안 상태의 보고서를 담은 메일로든 간에 진행상황을 전달드리고 의견을 구하면 큰 화를 입을 가능성은 크게 낮출 수 있다. 또한 실컷 일해놓고 "내가 말한 게 이게 아니잖아!"라는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간보고는 꼭 필요하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한 상황이 예상될 때면 넌지시 진행 경과를 미리 말씀드리고, 늦어도 용서해 달라는 무언의 양해를 구하는 일도 가능하다.


일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깨지겠구나...' 그럴 때일수록 중간보고는 깨지는 강도를 낮춰주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은 잘해보겠다는 사람에게 정이 가고, 도와달라는 사람을 마냥 못본체 하지 못하는게 사람 마음이다.



고참, 제발 혼자 끙끙대지 말고 좀 나누세요

부장 : OO 수석, 요즘 숙제가 좀 많지? 미안한데 이해 좀 해줬으면 하고...

수석 : 다 회사일인데요. 새삼스레 왜 그러세요.

부장 : 아니 그냥, 요즘 좀 몰리는 거 같아서. 그러지 말고 애들 좀 시켜.

수석 : 요즘 애들이 말을 듣나요? 꼰대 취급이나 할걸요. 그리고 시켜봤자 가져오는 것도 다 시원찮아서, 차라리 제가 하는 게 속편합니다.


점점 수평화되는 조직문화에서 가장 불쌍한 계층은 보직 없는 고참 선배들이다. 팀장 혹은 파트장 아래 직급 체계는 허물어져 가고, 그에 따라 후배에게 무언가를 시킬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상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참 선배들을 자주 찾는다. 신입 혹은 중간간부에게 미주알고주알 지시할 필요 없이, 알아서 깔끔히 결과만 가져오는 오른팔을 원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척하면 척' 해오는 능력은 업무 역량보다는 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고참 선배들 중 많은 분들은 혼자 끙끙대다가 담배만 뻑뻑 피워댄다. 후배에게 좀처럼 업무를 재분장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맘에 들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본인이 일을 시킬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혼자 많은 일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본인 및 조직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일을 끌어안고 있으면, 매우 당연하게도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본인이 기존에 해오던 일을 계속하는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도 잘 나오지 않는다. 후배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결국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선순환이 일어나지 못한다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좋은 건 최초 업무분장 때부터 역할을 세세하게 배분하는 것이겠지만, 만약 상사가 게으른 탓에 그렇지 하지 못하였다면 그 짐을 떠안은 고참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이 고수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지만, 글을 읽고 깨우침을 얻어 직장의 고수가 된다는 것은 유튜브로 축구를 배워 메시처럼 공을 차기만큼 어렵다. 하지만 글을 통해 최소한 알까기를 하지 않는 정도의 기본자세는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직급별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너무 혼자서 끙끙대지 마세요


조직의 쓴 맛? 어느 양념이건 다 쓰임새가 있고, 잘만 활용하면 풍미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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