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6) 미덕, 그리고 주의사항
직장인은 일을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평가를 받는다.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계획대로 써나가고 한 분기 정도 지나자 스스로 공과를 따져보는 것을 보면, 휴직 중에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의 피가 흐르고 있나 싶다.
직장인의 평가는 정량 및 정성평가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정성평가는 대개 잘못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음을 피력하는 '반성문'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팀장님의 숙제를 충실히 해냈다는 '자화자찬'으로 구성된다. 숙제와 반성문은 학생의 영역인줄로만 알았건만,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3개월간의 습작 결과 '보세요, 이것이 바로 저의 글입니다!' 라고 당당히 내세울만한 색깔이 아직 없다는 안타까움에도, 정성평가의 끝자락에는 사족같은 소회가 남는다. 아재답게 옛날 방식을 빌리자면, 글쓰기는 OOO이다.
글쓰기는 '돋보기'이다
나와 가족, 그리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때로는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머릿속에 일기를 그리듯이, 혼자 차분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하자면 생각에 대한 생각인 셈이다. 성찰의 시간도 갖고,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 고민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스스로에게 상을 준 것처럼 수상소감을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혼내는 사람이 없어도 반성문이 줄줄 나온다.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분명 전보다 내 삶에 대한 관심은 증가했다.
또한 타인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다. 전에는 누군가와 다투기 전까지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 나와 직접적인 상관없는 그 혹은 그녀의 사정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그런 성격으로는 도저히 쓸 수가 없기에 귀찮지만 관찰하고, 생각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알고보니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합이었다.
글쓰기는 '치료제'이다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인데다, 화가 난 후에는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는 버릇이 있었다. 집에서도 그랬고, 회사에서도 그랬다. 딱히 할 말이 없다기 보다는,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말로 실수를 할 것만 같고, 그런 말이 결국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나를 화나게 한 일들이 반나절 쯤 지나면 하나의 에피소드로 둔갑한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다. 화가 났음에도 오히려 쓸거리가 생겼다고 내심 흐뭇해 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쓰다 보면 자연스레 화가 누그러질 때도 있고 미처 보지 못한 생각의 이면을 발견할 때도 많다. 어느새 한 편의 글이 나오고, 기분은 조금 풀린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대개 내 컴퓨터 안에서 내성적인 여생을 보내게 된다.
글쓰기는 '방아쇠'이다
결정장애, 이보다 나를 더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는 일은 좀처럼 시작하지 않았다. 무엇이 최선인지 몰라서, 혹은 성급한 결정에 후회를 할까봐서 거의 모든 일이 망설여졌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때로는 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처럼, 그렇게 고민고민해서 결정한 일이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닐때도 많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결정은 늘 더디기만 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글을 쓸지만으로도 한참을 고민했었고, 시작이 참 힘들었다. 하지만 휴직이라는,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는 장점을 활용해서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게 무엇이든, 흉내라도 내보자는 마음으로 에세이, 칼럼, 여행기, 독후감, 소설, 시, 동화까지 서툴어도 일단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떤 글은 남겨지고, 어떤 글은 버려진다. 장바구니에만 넣고 살까 말까 고민만 하던 옷을 반품할지언정 일단은 사고 보는 것처럼, 입어 봐야만 알게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후회도 덜 남는다.
글쓰기는 '노후대책'이다
노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글을 쓰겠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책 써서 돈 벌겠다고? 베스트셀러 작가나 되면 모를까, 인세로 먹고 살기 힘들텐데..."
사실 노후라는게 조금은 햇갈리는 개념이라,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이후 죽기 전까지의 삶이라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현역으로 남아야 할테고, 50이 되기도 전에 금융소득 만으로 충분히 풍족한 생활이 가능하고 더이상 일을 할 의사가 없다면 이미 노후의 삶에 접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더 이상 일할 의사가 없는 시점에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통장 잔고를 유지할 수 있다면, 글쓰기는 꽤 좋은 취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싼 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도서관에 간다. 오전에는 책을 읽고, 도시락을 먹은 뒤 오후에는 글을 쓴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도서관, 그때쯤이면 지금보다 몇 배는 빠른 네트워크도 무료로 제공해주지 않을까? 아낌없이 세금을 냈으니 조금은 누릴 줄도 알아야지 싶다. 만약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 여행도 좀 다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노후라는 시기는 재산을 형성하기 보다는 잃지 않아야 하는 시기이고, 또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하다못해 화투도 치매예방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쓰는 글이 노후에는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그맘때 쯤 되면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온 내 아이 또래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2010년대생이 온다'는 내가 찜해 둘테다.
글쓰기는 '빨간펜'이다
전화 혹은 짧은 텍스트 문자에 익숙한 시대라 좀처럼 긴 문장을 쓸 기회가 없었기에, 업무 메일 혹은 보고서를 쓸 때면 맞춤법은 물론 완성된 문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더군다나 조금씩 길게 쓰려는 노력을 할 때면 몇 배로 힘이 든다.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꽉 막힌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럴 때면 다 잊고 잠시 접어둔다. 다른 일 혹은 생각을 한 뒤, 돌아와서는 전에 써둔 글을 소리내어 읽어 본다. 어색한 표현을 바로잡고, 문장의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늘리는데 꽤 효과적이다. 잠시 멈추는 연습은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주의사항
혼자 일기장에 끄적이는게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칠 경우 본말이 전도될 수 있고, 심하면 관종이 될 수도 있다. 90일간 글을 쓰고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본 결과 깨달은 바가 있다면, 결국엔 좋은 글이 공감을 얻고 사랑받는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화려한 표현보다는 간결 명확 솔직한 글, 멋모르고 쓰지 않은 자신감 넘치는 글, 그리고 괜시리 하는 혼잣말이 아닌 목적이 뚜렷한 글. 다시 아재력을 발휘하여, '적자생존'의 길로 접어든다.
Survival of the fittest? of the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