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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Oct 04. 2019

31. 저는 반쪽짜리 딸바보였습니다

(Week 15) 고해성사


서너살 쯤이었나, 아이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맘때쯤 딸이 있는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사람이 나를 좋아하니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


격하게 공감한 저는 그 친구를 딸바보라 불렀고, 그 역시 저를 딸바보라 불러줬습니다. 저는 이 정감 어린 호칭이 듣기 좋았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SNS에 사진을 올리며 반응을 즐겼습니다.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가게 되면 세상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다른 부부의 대화에서 '저 집 아빠 좀 본받아'라는 말을 엿듣게 되면 어깨가 으쓱해졌고, 프랜디나 스칸디대디 같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그게 무슨 뜻이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한편 휴직과 함께 늘어난 아이와의 시간이,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힘들긴 합니다. 전에는 족집게 핵심요약집만 보고 그럭저럭 시험을 봤다면, 이제는 두꺼운 전공서적을 진득하니 읽어야만 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매일같이 새벽별 보며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하고, 어영부영 뭐 좀 하다가 잠시 쉴까 하면 곧 아이가 옵니다. 이상하게도 몇 시가 되었건 아이는 늘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이제 곧 집중근무 시간이 찾아옵니다. 간식도 챙겨줘야 하고, 숙제도 봐줘야 하고, 저녁밥도 차려줘야 하고, 함께 퍼즐이나 보드게임도 해줘야 합니다. 물 샐 틈 없는 빡빡한 스케줄 속에 잔소리 한두 마디를 보태 하루를 완성하고 나면 어느새 아이가 잘 시간이 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저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지만, 아이는 어쩐지 어제보다 조금은 자란 것 같아 보입니다. 이 시간쯤 되면 피곤한 몸을 일으켜 글을 쓰려고 이 생각 저 생각 해보는데, 가끔 미래의 제가 저에게 속삭입니다.


훗날, 너는 이 날들을 그리워할 거야


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기 전 한 번 뒤돌아보고 올라탄 뒤에도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데, 그게 그렇게 애잔합니다. 7시간 후면 볼 텐데 말이죠. 학교에서 돌아와서 오늘 도시락 맛있었다고 하면, 그게 또 그렇게 흐뭇합니다. 고작 김밥, 유부초밥 아니면 볶음밥을 했을 뿐이지만 미슐랭 스타 셰프도 부럽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칭찬받은 일 언짢았던 일 시시콜콜 늘어놓는 그 얘기가 그렇게 재밌습니다. 전에는 제게 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저 역시 남의 얘기를 잘 듣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이가 금세 또 배가 고프다고 간식을 달라고 할 때면 조금 귀찮기는 해도 나를 찾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은 회사를 다닐 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아니면 엄마를 찾았지, 저는 아이가 찾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저는 제 기분이 내킬 때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매년 아이의 생일잔치는 성대하게 해 줬지만, 평소에는 은근슬쩍 침대로 도망 와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들 때가 많아 아이의 그림 속 저는 늘상 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는 처음 몇 번은 깨웠지만, 얼마 뒤에는 아빠는 원래 자는 사람이라고 쿨하게 인정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아이의 다른 표정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아내와 다툴 때, 혹은 제가 운전을 거칠게 할 때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은 많아져 아이를 전보다 유심히 보노라면,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딸바보를 자처하던 제가 어쩌면 아이를 겁먹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 중에 누군가와 비교하는 말을 할 때면 아이의 표정에는 열등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말은 못 해도, 분명 괴로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아이의 이쁜 시절을 음미하는 반쪽짜리 딸바보였을 뿐, 아이가 저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아무리 천륜이라 해도 아이와의 유대감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심하다고, 배고프다고, 어디가 아프다고 저를 부르는 아이. 지겹고, 답답하고, 피곤하다가도 문득 한번쯤 휴직 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PS. 보속으로 매일 아이에게 칭찬 한마디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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