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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Oct 14. 2019

34. 점점 아빠의 나이가 되어간다

(Week 17) 아빠의 마음


엄마집에 가면 늘 사진속 아빠가 반겨주신다.




아빠 없는 삶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아빠가 들으면 서운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엄마가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 그저 착한 아들의 역할, 성실한 학생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게까지 힘들건 없었다. 남들처럼 과외를 받거나 종합반 학원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단과반 몇 과목 수강하면 공부를 쫓아가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지금은 안된다고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혼자 조금 더 노력했을 뿐 크게 힘에 부치지는 않았다. 단지 주위에서 딱하게 보는 시선이 싫었고, 그게 싫어 조금 열심히 살았다. 힘들다고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에, 그래서 아빠 생각이 잘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6년간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 합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 참 오랜만에 아빠 생각이 났다. 한동안 아빠를 생각하는 자체가 힘들 것 같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왔지만 막상 무언가를 이루고 나니 그 공허함에 아빠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ARS 음성 메시지로 합격 소식을 듣고는 형과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정신이 들 때쯤엔 아빠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이 소식을 전해 드릴 아빠가,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모를 아빠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많이 속상했다. 남겨진 우리의 입장이 아닌,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가신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걸 이제서야 처음 생각해 봤다는게 너무 죄송했다.


그 후로도 무던한 삶 속에 조금씩 좋을 일이 생길 때면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에 큰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시고는 두둑하게 기숙사비를 보태주셨다. 너무나 감사했고, 아빠 생각이 났다. 생전 해외 여행이나 출장을 좋아하셨는데, 이 소식을 들으셨으면 아들이 드디어 해외 경험을 한다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졸업과 함께 취직을 하고 곧이어 결혼을 하자 아빠 친구들은 당신들의 일처럼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셨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줘서 기특하다고. 또다시 아빠가 생각났다. 아들놈들만 있는 집에 딸 같은 며느리가 왔다고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몇년 후 아이가 태어나자 할머니가 되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시던 엄마는 너무 좋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았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셔서 주름진 얼굴이 금세 활짝 펴진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도 아빠가 떠올랐다. 사진속 아빠는 주름 하나 없이, 항상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어느새 아빠 없이 살아온 날들이 함께한 날들의 두배가 되어 버렸다. 기억이란 점차 희미해지는게 순리이건만, 그마저도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잘 생각나지 않을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점점 더 선명해진다. 바람에 날아갈 뻔한 제주도 여행, 처음 사주신 가정용 게임기, 길에서 사 먹던 붕어빵과 번데기, 시대를 앞서 맛본 대치동 피자, 한여름의 잠실 야구장과 한겨울의 베어스타운 리조트, 해외 출장을 다녀오실 때면 늘 챙겨 오시던 외제 선물들, 마지막으로 산책하던 둔촌 주공아파트까지.




아직도 철없기만 한 나는 마흔 줄에 접어들어 어느덧 아빠와 나이가 비슷해져 버렸다. 아빠의 나이가 되어갈수록 뜻 모를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고, 문득 그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련해질 때도 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을 일이 많은데, 그렇게 눈을 감으실 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날에 나는 또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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