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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Oct 18. 2019

35. 이해해 달라는 말, 위로해 달라는 말

(Week 17) 엄마의 마음


어른의 말은 아이의 말과 다르다. 아이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만, 어른은 아프면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주위에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분은 대개는 쉽게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정말 싫으면 말없이 돌아서지만, 싫다고 말하는 얼굴에는 아직 약간의 애정이 남아 있다. 다만 이 말은 아프다는 말이고, 내 아픔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고, 위로해 달라는 말이다.


이 말은 커피 한잔 마시며 숨 좀 돌리고 싶다는 말이고, 그러면서 상사 욕을 같이 해달라는 말이고, 결국은 내 편이 되어달라는 말이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지위고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며 쉽게 역전이 일어나지 않는 명확한 관계이다. 관계에 따른 기대치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에 직장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대체로 수월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게 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가족, 특히 엄마의 말이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나의 보호자, 나의 지식인이었던 엄마.


어릴 적 기억에 엄마의 말은 무척이나 명확했다. 자식들에게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고, 무엇을 물어봐도 맞다 틀리다 혹은 된다 안된다를 말씀해 주셨다. 간혹 고심 끝에 번복하는 경우는 대개 우리의 부탁을 거절하셨다가, 마음을 바꾸신 뒤에나 해당되는 정도였다. 그 시절 모르는 것은 엄마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왔고, 엄마가 모르면 나도 몰랐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엄마와의 대화가 눈에 띄게 줄었고, 대개 엄마가 무언가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나는 그럭저럭 적응해 갔지만, 엄마는 그렇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혹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는 일은 세대 간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도 엄마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집안 최고의 어른이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였고, 엄마의 아들에서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두가지 위치에 모두 해당되기는 하나 최소한 역할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만은 분명했다. 나 역시 어느덧 어른이 되었고, 엄마도 여전히 어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예전 같지 않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말도 조금씩 변해갔다.


"이 옷 괜히 샀나 봐. 몇 번이나 입을지 모르겠는데 그냥 환불할까? 그래도 중요한 날에 입을지 모르는데 그냥 둘까?"
"다음 달에 친구들이랑 해외여행 다녀와도 될까? 요즘 운동 열심히 해서 컨디션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집에 세탁기가 잘 안 돌아가는데,  A/S 부를까? 아니면 새로 살까? 요즘 새로 나온 모델이 좋다던데."
"주말에 엄마 집에 와서 밥 먹을래? 아니면, 그냥 나가서 먹을까? 엄마가 요즘 간 보는 게 자신이 없어서."
"이번 주에 아이 봐주러 가기로 했는데, 못 갈 것 같네. 미안해서 어쩌지? 중요한 일정은 아닌데, 그냥 취소하고 갈까?"


엄마의 말은 전보다 힘이 없어졌고 후회 섞인 말도 많이 하신다. 한번 결정한 일을 번복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그리고 눈에 띄게, 사소한 일에도 나 혹은 아내의 동의를 구하실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많이 낯설었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엄마는 엄마라서,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성상을 떠올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왜 이런 말을 하시지? 왜 이런 것까지 물어보시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세상과의 접점이 점점 좁아지고, 그동안 살아온 경험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우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엄마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나이를 먹는 동안, 어쩌면 엄마는 더 빠르게 나이를 드시고 계신 게 아니었을까? 내 신경이 온통 아이에게 쏠려 아이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엄마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외로우신 게 아니었을까?


여전히 엄마의 말이 낯설기는 하지만 엄마의 표정을 관찰하면 대체로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헷갈리는 듯해도 무언가 원하는 방향에 동의를 구하고 계신다. 이제는 눈치 싸움, 가능한 정확하게 포착해서 맞장구 쳐드려야 한다. 흐뭇해하시면 성공, 혹시 헛다리 짚었더라도 재빠른 태세 전환 후 답에 근접해 가면 절반은 성공이다.


엄마의 손을 들어주는 아들의 역할, 엄마가 원하신 건 설사 틀렸을지라도 이해해 달라는 말,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 감을 위로해 달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맞아요. 잘하셨어요.
제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원하는 답을 들어 웃으실 때 보면 또 영락없는 소녀 같기도 하다가도, 어떨 땐 또 갑자기 열을 올리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신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맞는 말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난 감춰진 표정으로 그저 듣고만 있다. 세상을 바꾸시겠다는 것도 아니니 가만히 듣고는 웃어넘긴다.


엄마의 마음,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전히 어렵기만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가족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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