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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Oct 25. 2019

37. 떡볶이 국물은 물보다 진하다

(Week 18) 이래 봬도 소울푸드


자작한 국물 속 매콤 달콤 소스를 잔뜩 머금은 밀떡은 본래의 색이 무엇인지를 잊은 듯하다. 갓 요리하면 소스가 겉돌기에 조금은 불어도 전날 만들어둔 게 훨씬 감미롭다.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닌 맛. 멸치 다시마 육수는 잔치국수 먹을 때나 쓰면 되지 지금 이 순간에는 값싼 조미료 정도면 충분하다. 재료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맛의 본질이 왜곡되기에, 어묵 몇 조각과 파 한 움큼 넣고 약불에 오래 끓인 게 제격이다.


우아하지 않게 쩝쩝대며 먹어야 제맛인 나의 소울푸드, 떡볶이.




Part 1. 친구가 필요해


국민학교 시절 만화책에나 나올법한 험상궂은 얼굴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빡빡 민 머리에 날카롭게 찢어진 눈, 거친 피부는 여린 동심을 압도하기에 충분하였기에 그의 주변에는 어울리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하루는 동네 명일시장 어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초록과 하양으로 마블링된 분식집 그릇에 담긴 떡볶이 300원어치를 시켜 먹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그 친구가 슬쩍 다가왔다. 흠칫 놀라 인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에 그 친구는 주인아주머니를 향해 수줍은 듯 말했다.


"엄마, 제 친구한테 순대 꼬치도 하나 줘보실래요?"


젓가락에 꽂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순대를 받아 들고는 소금에 찍어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친구를 따라 떡볶이 국물에 뒹굴뒹굴 적셔 먹었다. 한 입 먹고, 한번 쳐다보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왜 그리 이사를 많이 다녔는지, 안 그래도 내성적인 나에게 새 친구를 사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처럼 넉살 좋게 먼저 다가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물어보고는 친구가 되는 일이 뭐 그리 어려웠을까, 누군가 몇 마디 말을 건네줄 때까지는 주로 멍 때리기 일쑤였다. 그런 의미에서 중학교 시절 내게 성당은 신앙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사교의 공간에 가까웠다.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레퍼토리가 있기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만남의 장. 미사를 마치고 지루한 교리 수업까지 듣은 것은 수업을 마친 뒤 혹시 있을지 모를 회합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대학생이던 교리 선생님은 종종 우리를 성내동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즉석 떡볶이집에 데려가 주셨다. 짜장 소스가 살짝 첨가된 검붉은 떡볶이 국물에 밀떡, 라면 사리, 쫄면 사리, 삶은 계란, 튀김 만두를 넣고는 넘치지 않도록 살살 저어줬다. 라면이 살짝 익고 떡이 둥둥 떠오를 즈음이면 필사적인 젓가락 경쟁이 시작되었다. 게 눈 감추듯 어느새 국물만 남아버린 냄비를 보며 옆에 앉은 친구와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하고는 선생님께 묻지도 않고 추가 주문을 넣었다.


"아줌마, 여기 밥 두 그릇만 볶아주세요!"


선생님의 난처한 표정을 모른 체하며 친구와 낄낄대고는, 칼싸움하듯 숟가락을 격렬하게 부딪쳐가며 볶음밥을 떠먹었다. 친구가 정성스레 긁어놓은 누룽지를 몰래 뺏어먹은 뒤 승자의 표정으로 호기롭게 한 잔의 물을 떠다 주었다. 자칫 심심할 뻔했던 이번 일요일 점심도 은혜롭게 해결, 새 친구와 함께.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될 즈음 31번을 배정받은 나는 또다시 친구 없는 상황에 놓였다. 터벅터벅 땅만 쳐다보며 집으로 가던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내 짝이었던 우리 반 30번 친구가 눈 앞에 보였다. 어디 사는지 같은 방향인지 확인하고는 별 말없이 동행하던 그 친구에게 갈림길이 나올 즈음 물어보았다.


"저기, 떡볶이 먹고 가지 않을래?"


그 시절 용돈은 왜 그렇게 박했는지 두 고등학생 주머니를 탈탈 털어봤자 나온 돈은 고작 천 원이었다. 이 돈으로 즉석 떡볶이는 무리라 우리는 둔촌 시장을 배회한 끝에 시장 끝자락에서 허름한 포장마차를 하나 발견했다. 단돈 천 원으로 허기진 두 명의 십 대 청소년의 배를 채워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둘러보던 나는 주먹만한 튀김 덩어리를 발견하고는 난생처음 김말이라는 것을 주문했다. 주인아저씨는 무심한 듯 묻혀줄까? 하고 물으셨고, 난 당최 뭘 묻히는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잠시 후 떡볶이 국물을 머금은 김말이 튀김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난 세상에 태어났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30번 친구와 31번 친구는 그 번호처럼 한 달 가량 함께 같은 골목을 지나 같은 포장마차에 들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주문한다.


"아저씨, 김말이 천원어치. 국물에 묻혀주세요!"





Part 2. 힐링이 필요해


직장인에게 월요병은 결코 쉽게 치료할 수 없는 만성적인 마음의 병이다. 오죽하면 주말 출근이 잦던 시절에는 월요병이 오지 않음에 감사할 정도였다. 개그콘서트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유행하던 시절, 그 프로그램의 엔딩송은 곧 월요병을 알리는 오프닝송이었다. 한참을 깔깔대다가 이내 찾아온 침묵 속 내일 아침이면 반드시 깨질 것이라는 예감에 숙연해질 즈음이면 스스로에게 떡볶이를 처방했다. 내일 퇴근 후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떡볶이를 먹겠노라 주문을 외운다.


어디에 살건 그 동네 떡볶이집은 일단 두루 섭렵한 뒤 나만의 맛집을 찾아내야만 안심이 된다. 당뇨병 환자가 늘 인슐린을 챙겨 다니듯 월요병 환자에게는 입에 맞는 맛집 지도가 필요한 법이다. 오금동에 살 당시에는 훗날 딸바보가 될 것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아딸을 주로 찾았고, 마포로 건너온 뒤로는 혼자서는 국대, 아내와 함께일 때에는 코끼리 분식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착한 맛은 효과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어느 정도 조미료가 가미된 불량스러운 쾌감을 주입해 주어야만 상처 받은 마음에 딱지가 지고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무감각한 피부가 재생된다.




4년 전 홀로 미국 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도 난 떡볶이를 찾아 헤매었다. 한인 타운까지 가기는 너무 멀었기에 한인 마트에 있는 모든 종류의 떡볶이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좋아 풀무원이나 CJ와 같은 국내 기업의 제품부터 미국 현지에 설립된 한국 기업의 제품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고, 마침내 내 싸구려 입맛에 최적화된 떡볶이 소스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유학 시절, 월요병이 사라진 자리에는 외로움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사전 주입된 매뉴얼대로 밀떡을 불리고, 파를 썰고, 떡볶이 소스를 넣은 뒤 약불에 자글자글 끓여냈다. 혼자 TV를 보며 쩝쩝 씹어대다 보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함께했던 친구들 얼굴도 스쳐 지나가고,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친척, 친구, 직장 동료들 얼굴도 떠오른다. 그까짓 떡볶이가 뭐라고, 값싼 분식 주제에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 준다. 그게 뭐라고 자꾸만 생각이 나는지,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도 나를 단숨에 한인 마트로 달려가게 만드는지.




10월 24일 나를 위한 생일상, 오늘 최상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어젯밤 떡볶이를 만들었다. 여태 남들 하는 대로 살아왔는데 내 생일상 정도는 내 마음 가는 대로 미역국 없이 고기반찬 없이 차려도 되지 않을까.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아이도 웬일인지 떡볶이는 즐겨 먹는다. 찬물로 입을 헹궈가며, 날 닮아 쩝쩝대며 먹는 아이에게 훗날 커서 아빠의 생일상을 차려줄 나이가 되면 반드시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 부탁했고, 아이는 그렇게 하리라 흔쾌히 답해 주었다.


어려울 것 없어, 그저 조미료 잔뜩 들어간 그 불량스러운 맛이 잘 스며들도록 약불에 진득하게 끓여주면 된단다. 언젠가 아빠가 힘들어 보이는 날에는 떡볶이를 만들고는 다가와 살포시 안아주렴. 그런 날에는 아빠의 친구가, 아빠의 힐링이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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