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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Dec 18. 2019

51. 98세 미국인 할아버지의 뻔한 레슨

(Week 26) 슬기로운 취미생활. 아이와 함께


"자네 혹시, 괜찮으면 나랑 좀 쳐보지 않겠나?"

"아, 제가 이제 겨우 한 달 배운 초보라 잘 못 치거든요. 지금도 아이에게 공을 토스해주며 연습시키는 중이었습니다만..."

"내가 나이가 많아서 오래는 못 칠 테고 그냥 몇 분만, 같이 치고 싶은데."


아이와 테니스 연습 중 잠시 벤치에 앉아 쉬려던 찰나에 한 어르신께서 다가오셨다. 언뜻 보기에도 일흔은 거뜬히 넘기셨을 것 같은 나이의 미국인 할아버지, 한 손에는 테니스 라켓 나머지 한 손에는 공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계신 모습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테니스는커녕 거동조차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 간절한 눈빛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 알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코트 위에 자리하였다.


뛸 수 없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몸 상태를 감안하여 가능한 가볍게, 아이에게 토스하듯 툭툭 쳐 넘겨드리면 할아버지도 비슷한 리듬으로 툭툭 쳐 나에게로 공을 넘겨주셨다. 조금 세거나 방향이 엇나가 버리면 절뚝절뚝 공을 주으러 가셔야 했기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할아버지께서 치기 좋을만한 위치로 공을 보내드렸고, 할아버지께서는 오랜 경험으로 몸에 감각이 배어 있으신지 내 쪽으로 곧잘 공을 넘겨주시곤 했다. 긴장감 속에 호흡을 주고받은 지 겨우 10분 정도 지났을까, 할아버지께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네트를 향해 걸어오셨다.


"나는 이제 힘들어서 좀 쉬어야겠어."

"아, 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고마워. 나도 재밌었다네. 그런데 자네, 혹시 내가 몇 살 정도 되는지 맞출 수 있겠나?"

"제 생각에는, 일흔 혹은 여든 정도..."

"올해로 98세라네 내가. 아내가 살아있을 땐 함께 테니스를 쳤는데, 아내가 먼저 가버려 지금은 나 혼자 남아서 운동 삼아 치고 있다네. 아이랑 같이 치고 있었지?"


98세의 미국인 할아버지. 한국 나이로 치면 100세를 보름여 앞둔 99세 어르신과 함께 테니스를 친 셈이니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한편 마음 한 구석 경건함이 묵직하게 솟구쳤다.


"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한 달 정도 같이 레슨을 받는 중입니다."

"그래, 참 보기 좋네. 가족과 함께하는 취미가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 아이와 같이 운동할 수 있는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게나."


가슴 깊이 새겨들을만한 좋은 말이지만 그동안 늘 뻔하게만 들렸던 건 뻔한 만남, 뻔한 상황에서 의미 없는 대화 정도로만 주고받았었기 때문일까.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듣는지에 따라 그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고 이주일 선생님의 금연 캠페인이 그랬고,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라는 질문이 그랬다. 나는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그 뻔한 말을 이 순간만큼 진실되게 듣지는 못할 것 같다. 아이와 테니스 연습을 할 때면 그때의 뭉클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될 것만 같다.


이후 할아버지께서는 몸소 포핸드 스트로크 시범을 보여주시고는 내가 던져주는 공을 아이가 칠 때마다 'Good job, sweetheart!'라고 외쳐주셨다. 마치 그런 격려와 칭찬의 말은 더 가까이서, 가능한 더 자주 해주라고 내게 말씀해 주시려는 듯이.






아이가 미국 초등학교에 다닌 지 두어 달 정도 지났을 즈음, 생각만큼 늘지 않는 영어 실력에 조바심이 났다. 앞으로 한글책은 못 보게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단어 하나하나 설명해 줬는데도 왜 문장 해석을 못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여러 번. 그럴 때면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내 시선을 회피한다. 서운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성격도, 하지만 언짢은 마음까지 감추지는 못해 표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마는 것 까지도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보자니 이내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다시 차근차근 알려주려 해도 이미 상처 받은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빠가 숙제를 도와줄 때 화를 낸 게 서운했다 말하는 아이, 그 감정은 아마도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맘때쯤 테니스를 시작하였다. 시간은 많고, 날씨는 좋고,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는 학원도 안 가니 운동을 배우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막상 시작해보니 아직 팔에 힘이 부족하고 타이밍 잡기도 쉽지 않은지 아이는 라켓에 공을 맞추지 못해 헛스윙을 할 때가 더 많았다.


의욕만큼 잘 되지 않아 시무룩해진 아이지만, 아주 가끔은 정확히 공을 맞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가 치기 좋은 위치로 내가 공을 던져줄 때였다. 무거운 라켓을 휘둘러 공을 맞춰야 하는 생소한 운동. 제 아무리 좋은 선생님께서 레슨을 해주신다 해도 익숙지 않은 일에는 최소한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본 동작을 몸에 익히는 데에는 그 어떤 좋은 선생님보다도, 본인이 자연스럽게 휘두를 때 공이 날아와 맞게끔 잘 던져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비록 나는 테니스는 잘 모르지만, 아이가 편히 칠 수 있게 던져주는 건 자신 있었다. 레슨이 없는 날에도 그렇게 며칠 연습을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몸에 익었는지 방향을 틀거나 높낮이를 바꿔 던져줘도 쫓아가서는 곧잘 쳐내곤 한다.


어쩌면 몇 번 해보고는 재미없다며 포기했을지도 모를 테니스를 이제 아이는 좋아하게 되었고, 나는 아빠의 역할을 하나 더 배운 것 같다. 영어도, 이렇게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며 'Good job, sweetheart!'를 열심히 외쳐주면 언젠가는 잘하지 않을까. 행여 주어진 2년의 시간이 다 흘러간 뒤에도 생각만큼 유창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함께하는 시간 동안 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그 뻔한 메시지를 내 가슴에 새겨주기 위해 와주신 98세 미국인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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