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Gray Feb 20. 2020

62. 마흔 여행자의 시간

(Week 35) 시간의 방


돌아오는 길에는 어둠 속 비가 내렸다. 적당히 촉촉한 게 아닌, 모조리 씻겨 나가라 퍼부어 내렸다. 플로리다주 데스틴에서 조지아주 애틀랜타까지는 약 500km, 차로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해는 이미 저물어 전조등과 반사등에 의지해 어둠 속을 달리는 일이지만, 막상 달려보면 크게 지루하지는 않다. 그저 생각 없이 몇 시간이고 멍하니 이 길을 가다 보면 집이 나오겠지, 생각한다.


캄캄한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면 진공 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넋을 놓고 달리다 보면 익숙한 거리를 지나 집에 도착할 테고, 노곤함에 잠든 뒤 새벽녘 눈을 뜨면 마치 꿈에서의 기억처럼 뿌옇게만 느껴질 것이다. 떠나는 길과는 달리 돌아오는 길은 대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곤함에 지쳐 멍한 상태로 출발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즈음엔 이미 돌아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길을 달렸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무감각하다. 그 무의식의 시간 탓에 내 인생 몇 시간 정도 도둑맞은듯한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은 대여섯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한두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삼일전에도 나는 같은 길을 달렸다. 다만 방향이 반대였을 뿐. 그때는 달리는 내내 경쾌한 음악에 흥얼댔고, 일기예보와 같이 파란 하늘이 반겨주길 기대하였다. 하얀 백사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고, 온 세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일 환상적인 일몰을 꿈꿨으며, 미국 남부식 해산물 요리로 배를 채울 생각에 허기가 밀려왔다. 떠나는 길은 떠난다는 이유만으로도 설렘을 주기 충분하기에, 그래서 그 시간은 무척 더디게만 흐른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플로리다주 데스틴까지는 약 500km, 마찬가지로 차로 약 5시간 반 걸리는 거리지만 체감하기로는 몇 시간은 족히 더 걸리는 듯했다. 빨리 도착해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얄밉게도 고무찰흙처럼 시간을 길쭉하게 늘려 놓고 말았다.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달렸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같지 않았다. 같은 시간이 다를 리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시간 측정의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진다 해도 시간이라는 것은 저마다의 상황에서 서로 같지가 않아 10대의 시간과 20대의 시간이 다르고, 20대의 시간과 40대의 시간 역시 달랐다. 40대의 시간과 그 이후의 시간,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같지 않을 것만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왠지 그럴 것만 같다.






어느 책에서 읽은 대로라면,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의 길이가 제각각인 것은 새롭게 접하는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유치원, 초등학생을 다니는 아이의 눈에 세상이란 낯선 경험으로 가득 찬 곳, 온갖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에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번 자동차 여행을 통해 한 가지 더욱 명확해진 것이 있다면, 다가올 일에 대한 기대감 역시 시간의 길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랬는지, 하루빨리 10대를 지나 20대가 되고,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군대 시절에는 전역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원할수록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고, 떡국을 두 그릇씩 먹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무반에서 매일매일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봐도 시간은 약 올리듯 느리게만 흘러갔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되고 나니 시간의 흐름에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졸업, 취직, 결혼을 거치며 체감적인 시간의 흐름이 점점 빨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시간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 때는 직장 생활이 시작된 이후부터였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진다 한들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의 일이라는 게 반복 숙달되기 마련이라 하루는 긴 듯해도 일주일은 짧았고, 일주일은 긴 듯해도 한 달이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가기 일쑤였다. 익숙한 일상과 크게 기대할 것 없는 내일. 이 쌍두마차는 내 인생 시간의 흐름을 점점 가속화시키는 주범이었다.


점차 새로운 경험은 줄어들며, 관계의 폭 또한 좁아지고, 사고는 경직되어 갔다. 오늘이 피곤하니 내일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그랬던 것처럼,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 생각 없이 걷다가 정신이 들 즈음엔 이미 집에 도착해 있곤 했다. '어디를 가야지'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익숙한 골목길을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새 방에 누워 있는, 그래서 또 몇 분 정도 내 인생에서 사라진 느낌.


서른, 마흔이라는 표지판을 이제 막 지나친 것 같지만 금세 다음 표지판이 나타나는 건 아닐지. 여태껏 경험하기로는 단 한 번도 시간의 체감 속도가 늦춰졌던 적은 없었기에 그 가속을 이기지 못해, 어느 날이 되면 소리 소문 없이 소멸되는 건 아닐지. 그 속도감에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은 절뚝거렸으면, 누군가 뒤꿈치를 꾸욱 눌렀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데스틴은 무척이나 입자가 고운 하얀 모래밭과 꿈속인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몽환적인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기에 카메라 셔터를 거듭 눌러대다가도, 어느 순간이 오면 사진 찍기를 멈추고 그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진 속 보이는 풍경이 두 눈으로 담아내는 것만 못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오의 태양은 미동조차 없어 보이지만, 해질녘엔 그 움직임이 제법 민첩하다. 그리고는 이내 어둠이 찾아온다. 빛의 흔적만이 외로이 떠다니니 또 하루가 저물었구나, 이렇게 한 시절이 또 지나갔구나 싶어 울적해진다.


모두가 잠든 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씻고 돌아누워, 잠들지 못해 그날의 사진들을 홅아본다. 사진 속의 일몰, 만약 다른 사진과 뒤섞여 있었더라면 그것이 일몰인지 일출인지 헷갈릴만하다. 만약에, 그것이 일몰이 아닌 일출이라 상상한다면, 저무는 날이 아닌 다가올 날이 될 수 있을까. 만약에, 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낯선 세계로 밀어 넣고, 허황된 기대라도 품고 살도록 최면을 걸어 본다면, 다시 느릿느릿했던 어린 시절로, 더디기만 했던 그 시간의 방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61. 상대는 유튜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