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36) 결혼 이야기
겁이 많은 사람에게도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고, 지혜가 있다. 어찌 보면 겁이 많은 덕분에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한다. 겁이 많은 성격 역시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단점이 될 수도, 거꾸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지레 겁을 먹고 좋은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단점일 테지만, 조심성이 많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푹 꺼질 위험이 있는 주식보다는, 말하자면 예금이나 채권 같은 삶이다.
한때 이직 고민으로 숱하게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분명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었고, 이미 앞서 나간 분들의 발자취를 보면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잠재력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기나긴 고민 끝에 결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돌아보니 당시 꽤나 겁이 났던 것 같다. 숫기 없는 내가 새로운 환경에, 돈 냄새에 무딘 내가 살벌한 여의도판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 다시 돌아온 사람에게 회사는 고맙게도 다시 기회를 주었고, 그 덕에 이제는 크게 한 눈 파는 일 없이 여기가 내 자리겠거니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당시 이직을 생각했던 회사는 몇 년 뒤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고, 조직 통폐합으로 인력을 크게 감축하였다 하니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의외로 부침을 겪기는 해도 결국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 자리를 옮겨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겁이 많은 내게 그런 가정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몇 년간의 체류를 허락해주는 종이 한 장에 의지해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성격이 득이 될 때가 있다. 겁이 많다 보니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버릇이 있고, 자연스레 그 최악을 피하고자 신경을 쓴다. 가령 미국에 온 이후 운전을 할 때면 끔찍한 상상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운전대를 잡으면 TV 속 참혹한 사고 현장에 대한 영상이 잔상처럼 머리를 스치기도 하고,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내 가족들은 어떻게 될지 막연하고도 두려운 마음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특히나 상식적으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정상일 것 같은 넓디넓은 미국의 고속도로 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뒤에는 어김없이 그렇다.
그런 생각이 자주 떠오르는 덕에 한국에서 운전할 때와는 달리 어지간해서는 차선을 바꾸지 않고, 과속도 하지 않는다. 방어 운전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대형 트럭이나 졸음운전을 하는 듯 갈지(之) 자로 움직이는 차량 옆은 가급적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추월해도 무시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도 바보같이 앞만 보고 달린다. 겁이 많은 성격 덕에 아직까지 사고 없이 무탈하게 사는가 싶다. 남들보다 빠르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는 크게 겁을 먹어 버렸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다.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는 이혼 과정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혼 역시 결혼의 일부라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혼에 대한 배경과 법적 절차가 차분하게, 그러나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만 후반부 들어 부부의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이 보여준다.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남편 찰리가 아내 니콜에게 소모적인 싸움을 잠시 멈추고, 법률 대리인 없이 단 둘이서만 진솔하게 얘기해볼 것을 제안하고 나서부터이다. 찰리의 제안에 니콜도 반기는 기색이라 나는 그 둘의 관계가 점차 호전되어 가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현실 세계라면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부부 사이에 그런 화해는 결코 손쉽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기라도 하듯, 차분한 대화는 이내 현실보다 현실적인 말다툼으로 격화되고 끝내 찰리가 니콜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울부짖기에 이른다. 그런 찰리를 다독여주는 니콜의 모습에 다시 한번 해피 엔딩을 기대했지만, 이 영화는 끝내 그런 류의 영화 같은 영화가 되어주기를 거부하였다.
사람마다 영화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내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찰리가 니콜에게 소리치는 장면, 그리고 끝내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실제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격해지는 감정에 불같이 화를 내고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찰리. 혼자 영화를 처음 볼 당시 그 장면에 눈물을 흘렸고, 아내와 함께 본 두 번째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찰리의 모습에서 곧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돌고 돌아 해피엔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독은 나의 바람을 끝내 외면하였고, 그런 까닭에 막을 내린 뒤에도 이 영화의 씁쓸한 뒷맛은 나의 현실세계에 잠입해 나를 겁먹게 만든다. 지금처럼 아내를 대한다면, 내게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휴직과 함께 아내에게 화를 내는 빈도가 부쩍 늘어났다. 사회생활에서 한 발짝 떨어진 뒤, 늘어난 시간에 비례해 삶의 단조로움 또한 증가하였다. 익숙했던 치열함이 사라지니 자존감 또한 낮아져만 갔다. 작은 불씨에도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높아진 빈도만큼 무뎌진 감각에 표현은 거칠어만 갔다.
마땅한 제어 장치가 찾지 못하던 내게 '결혼 이야기'는 다시 한번 겁이라는 도구를 슬쩍 내밀며 물었다. 가장 소중히 대해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차갑게 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만약 내 인생에 단 한 사람을 잃는다면,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때 가장 힘들지 생각해 봤느냐고. 사고의 잔상이 남아 운전대를 바짝 쥐었던 것처럼, 이제는 찰리의 오열이 나를 막아주려 한다. 겁이 많아 그럭저럭 살아온 내가, 다시 또 겁을 먹으니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