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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n 07. 2020

77. 읽지 못한 책 한 권

(Week 50) 백년 동안의 고독


서른 하나가 되던 해, 그러니깐 십여 년 전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무언가 좀 잡힐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안개 낀 것 뿌옇기만 했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내 생각의 깊이는 이십 대 시절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무언가 늘 부족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물론 전에도 책을 읽긴 했지만 조금 더 전투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100권이라는 목표를 잡고, 매주 읽은 책을 액셀로 정리하였다. 주로 봐오던 경제경영 서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의 장르도 넓혀가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이번 주는 인문 서적을 읽었다면 다음 주는 과학 서적을, 그러다 조금 지치면 소설을 집어 드는 식으로 장르를 순환하였다.


하루는 서점에서 고전문학 코너를 서성거렸다.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한 직후라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은 상황이었다. 읽을만한 책을 고르던 중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접해본 적 없는 남미 작가라는 신선함, 왠지 나와 취향이 맞을 것 같은 표지 그림, 그리고 거기에 적힌 '인간 고독의 잔학성'이나 '마술적 리얼리즘'과 같은 표현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알고 보니 수많은 지식인들의 추천 리스트에 올라 있는 유명한 작품이었다. 이 책이라면 다른 지루한 고전과는 달리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큰 감동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웬걸, 막상 책을 펼쳐 드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복잡한 등장인물과 가계도 때문인지 아니면 옛날 책 특유의 빼곡한 글씨의 낮은 가독성 때문인지, 재미는 있는 데 읽히지가 않았다. 책장을 넘기기 힘든 날이면 하루 쉬고 다음 날 다시, 또 펼쳐 들어 읽기 시작해도 몇 장 채 넘기지 못하고 덮기 일쑤였다. 이번 주는 좀 피곤해서 책이 눈에 안 들어오나 싶기도 했지만 다른 책을 집어 들면 쉬이 읽히곤 했다. 잠시 묵혀뒀다 몇 쪽 읽고, 또 몇 주 책장에 꽂아놨다 다시 꺼내어 읽기를 반복. 한 달이 지나도록 결국 100쪽을 넘기지 못하자 100권 읽기라는 목표 달성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덮어두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책장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꽂아 두었다. 남들이 그렇게 칭찬하는 이 책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이 책을 언젠가는 읽어내겠다 다짐했다.






5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나 홀로 유학길을 떠나게 되었다. 짐을 꾸리던 중 몇 권의 책을 골라 집었는데 그중 하나로 오래전 그 책 '백년 동안의 고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할 고독과 꽤나 잘 어울리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테고, 더욱이 미국에서 혼자 지내는 2년 동안 한글로 쓰인 책이라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5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몇 차례 시도해도 이상하리만치 이 책만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독자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대부분이 칭찬 일색이었다. 누군가의 인생 책이라는 평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남들 다 아는 무언가를 놓치는 것 같아 나는 더 작아지고 말았다. 무슨 문제가 있나 생각했다. 5년을 책장에서 묵고, 바다 건너 미국 땅으로 함께 날아갔던 그 책은 2년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꽂아두었다. 아니, 숨겨두었다 해야 정확하다. 나를 좌절하게 만든 그 책을 말이다.


또다시 4년이 흘러 이번엔 아내가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마흔의 나는 휴직을 신청하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결국엔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결정했지만 그 과정은 매우 힘들고, 고독했다.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몇 달이나 걸렸는데 가장 큰 문제는 삶에 대한 깊이나 가치관 따위가 10년 전과 다를 것 없이, 여전히 안개 낀 것 마냥 뿌옇기만 하다는 데 있었다. 짐을 꾸리던 나는 다시 한번 그 책 '백년 동안의 고독'을 챙겨 넣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읽다 말았다. 보기 좋게 반복된 세 번째 실패였다. 사실 이번엔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다들 좋다 하는 그 책이 나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였구나,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세상 문제 될 건 없구나,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너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아, 이 말을 해주고 싶어 곁에 두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지난 십여 년의 세월, 어딜 가나 한결같이 내 책장에 꽂혀있던 단 한 권의 책은 하필이면 내가 끝내 읽어내지 못한 '백년 동안의 고독'이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 호기롭게 집어 들었던 책이었지만 여전히 표지만 감상하고 있을 뿐이다. 주구장창 제목만 되새기고 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니.


다시 짐을 정리하며 확 버려 버릴까도 고민했지만 읽을 자신도, 버릴 자신도 없다.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 읽지 못한다 해도 어쩌겠나,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이 책 한 권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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