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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Jun 09. 2020

78. 잘 있거라 좋았던 날들아

(Week 51) 6월의 잠 못 드는 밤


나는 인생에도 어떤 싸이클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온다는 식의 순환이 인생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는 믿음이다. 아직까지 하늘 높이 솟구친 경험도, 반대로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버린 기억도 없기에 가능한 믿음 인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나락으로 빠져든다 해도 나는 그 믿음을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솟아오를 가능성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까지 우리 세 식구는 작년 6월 미국 땅을 밟았다. 아내의 미국 유학을 계기로 나는 어렵사리 휴직 결정을 내렸지만 자리를 2년이나 비우기가 어려워 아직 1년이 남은 아내와 아이를 남겨둔 채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좋았던 1년을 마무리할 시간, 이제는 조금 힘들 차례다. 그렇다고 인생의 한 순간을 토막 내 간주 점프처럼 건너뛴 뒤 그다음 순간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내 인생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고, 어쨌든 그것도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계획대로라면 런던을 시작으로 로마를 찍고 뉴욕을 여행하고 있을 뜨거운 6월이어야 했지만, 코로나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그곳을 거니는 일이 허락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집에만 갇혀 있다. 불평을 해보려다가도, 비록 가만히 틀어 박혀 있는 지루한 일상이라도 단 하루만 더 살아보길 소망하는 분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유명을 달리하는 시대라는 생각에 나의 철없음을 자책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엔 아쉬움이 남는 것은 꼭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나약하게 만들어졌다 믿고 싶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참 쉽다. 형편없는 핑계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말처럼 위로가 되는 말도 없다.


2014년 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치라는 것을 배웠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커다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을 세월호 유족들을 생각하면 고작 몇 년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길고 긴 인생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한낯 해프닝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버튼 몇 번 누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얼마 후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 해 4월 나는 배우고 말았다. 최소한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했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배워버렸다. 덜 아파도 아프고, 덜 슬퍼도 슬픈 게 인생이었다. 볼 수 있어도 그리운 게 사람이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둘로 쪼개져, 지나치게 작아진 나를 나무라다가도 그게 나인걸 어떡하냐며 금세 토닥거린다. 사람은 원래 그런 거라며 나를 위로한다.




6월이다. 올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참 빨리도 와버렸다. 잠자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나인데, 차마 잠들지 못해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평소 잠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내공을 지닌 나라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보며 이후의 삶을 생각해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퇴근 후 찾아오는 적막함에, 주말마다 느껴지는 무료함에, 지겹도록 소개되는 맛집 영상에 나는 짜증을 낼 것 같다. 한 번 가볼까 하다가도 발걸음을 돌릴 것 같다. 초침 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대는, 소름 돋게 차가운 계절이 와버렸다.



6월이 안 왔으면 좋겠어.
다음 주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들기 전 나지막이 새어 나온 아이의 말. 그 덕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무뚝뚝한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애틋함에 아이 얼굴 한번 더 쳐다보고, 천장 한번 바라본다. 이런 말 들었으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다음은 더 좋을 거라고 최면을 걸어 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잠은 안 온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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